[CEO 칼럼] 아직도 실패는 개인의 문제라 생각하는가

입력 2020-03-1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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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숙 사단법인 한국재도전중소기업협회 회장

‘두 번은 없다.’ 우연히 보게 된 한 방송사 주말 드라마 제목이다. 실패와 상처를 딛고 재기를 꿈꾸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한 번 실패하면 두 번은 없는 우리의 암울한 현실이 드라마 제목에 그대로 담겨 있다. 그런데 자신을 도와준 사람의 돈을 빼앗아 성공한 사람이 자신이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사람들로 인해 결국 실패한다는 드라마의 단골 스토리를 보면서 어떤 사람의 성공은 또 다른 사람의 실패를 딛고 일어선 결과라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미국의 작가 고어 비달의 “성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실패해야 한다”는 명언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중국은 중소기업의 90%가 경영난을 겪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퍼펙트 스톰(절체절명의 초대형 경제 위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국가적 재난은 취약계층부터 휩쓸고 지나가고 있다.

코로나19는 조만간 종식되겠지만 재난 상황에서 당장 생계 걱정부터 해야 했던 비정규직, 일일 노동자, 프리랜서들은 사채 시장으로까지 내몰렸을 막다른 구멍에서 헤어날 방법을 찾지 못할 것이다. 취약해질 대로 취약한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은 잠깐 연명됐던 대출 기한이 다시 도래하면서 카드 돌려 막기로도 더 이상 해결할 길이 없음에 절망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도미노처럼 번져나갈 재난의 경제적 후유증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는 건 이런 상황이 늘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IMF 외환위기, 닷컴버블의 붕괴, 사스 위기, 키코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메르스 사태 등 국가적 사건이 터질 때마다 늘 취약계층이 직격탄을 맞았고, 중소기업가들은 부도와 도산의 길로 내몰렸다. IMF 외환위기와 닷컴버블의 붕괴 때 망한 중소기업가들은 2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자신의 이름으로 사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는 망해서 없어졌는데 회사의 대표로서 져야 했던 책임은 절대로 소멸되지 않기 때문이다.

회생, 파산 절차의 근거가 되는 법인 ‘채무자 회생법’이 보증 채무의 부종성(빚이 없어질 때 보증 책임도 같이 없어지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산 절차에서 보증 채무를 줄이는 내용을 골자로 한 ‘채무자 회생법’ 개정안은 19대와 20대 국회에 걸쳐 4번이나 발의됐지만 회기 종료로 모두 폐기됐다. 역시 20대 국회에서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인 대표의 연대보증 금지 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입법화에는 실패했다. 채권 추심업체에 20년 전 빚도 계속 팔리고 연장돼서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도 없어지지 않는, ‘죽은 채권의 부활 금지법’도 20대 국회 때 발의됐지만 법 제정에 실패했다.

위기 때 취약계층을 지켜줄 법안, 중소기업의 안전망을 보전할 법안들은 하나같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 현실이 무엇을 말해 주는가. 세월호 사건 등 안전 문제가 정권의 향방을 바꿀 정도가 되었지만 해결되지 않는 안전상의 문제가 전 사회 영역에서 여전히 지속적으로 대두되는 건, 어떤 안전의 문제에도 상위 엘리트층, 기득권층은 별 영향을 받지 않는 약자만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실패는 약자의 전유물이 된 지 오래다. 약자의 실패를 딛고 기득권을 안전하게 유지하고 있으면서 실패는 개인의 게으름과 위기관리 부족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묻고 싶다.

학교 휴교로 급식을 담당해 왔던 업체가 무기한 휴업하게 되어 일자리를 갑자기 잃게 된 미혼모, 다섯 살 된 아들이 감염될까 염려하면서도 데리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하루 벌어 먹고사는데 공사가 중단돼 당장 쌀 걱정부터 해야 하는 건설 현장 노동자, 막노동의 후유증으로 몸이 성한 곳이 없지만 그에겐 그간 4대 보험의 혜택이라곤 없었다. 낮에는 푸드 트럭을 운영하고 밤에는 대리 운전기사로 겨우 생활하고 있었는데 모두 대면업이라 푸드 트럭은 물론 대리 기사까지 관둘 수밖에 없게 된 청년 창업가. 코로나19로 자금 회전이 갑자기 막혀 중소기업 긴급 대출을 신청했지만 두달 후에나 대출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시스템에 ‘망하고 난 뒤에 받으면 뭐하나’ 억장이 무너지는 한 중소기업 사장을 보면서 아직도 실패는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약자들의 경제 안전을 지키는걸 등한시 한 결과로 또 다시 온 나라가 재난의 후유증으로 신음하지 않으려면 이번 만큼은 이 위기를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기로 생각하고 선제적으로 코로나19 사태로 폭격을 맞고 주저앉은 모든 취약계층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을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이제 어떤 직업이 사라질지 어떤 사업이 살아 남을 지 미래는 더욱 더 불투명해졌기에 한번의 선택과 시도만으로 성공하기는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사회복지 시스템이 약자를 돌아보는 신뢰와 협동 기반의 선제적 위기관리 시스템으로 더 확장되어야 하고 취약 계층 맞춤형 재도전지원법이 특별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다.

‘신용불량이 코로나보다 더 무섭다‘는 한 기업가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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