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어느 회장님의 재판 전략

입력 2018-04-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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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지켜본 두 회장님의 이야기다. 한 회장님은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상습적으로 폭언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여론의 뭇매를 맞자 "이 모든 결과는 저의 불찰에서 비롯돼 질책을 모두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사과했다.

그로부터 8개월 뒤 열린 첫 재판에서 회장님은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그는 공소사실 인정 여부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재판이 끝나고 "혐의를 인정하느냐"고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의 혐의는 공소사실을 읽는 데 1분이 채 걸리지 않는 단순 강요 사건이다. 하지만 재판은 더디다. 이미 전관 출신 변호사가 그를 변호하고 있었고, 1월에 기소된 이 사건의 첫 기일은 3월에 열렸다. 그런데도 변호인은 '이론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다음 재판 일정을 2개월 뒤로 잡아달라고 요구했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다른 대기업 회장님은 항소심 재판부가 3번 바뀌었다. 눈여겨볼 부분은 법원행정처 부장판사 출신 전관 변호사를 선임한 뒤부터다. 이 변호사가 가세한 뒤 첫번째 재판부는 변호인과의 연고 관계 때문에, 두번째 재판부는 다른 재판부에서 심리 중인 별개의 사건과 함께 재판받게 해달라는 이유로 변경됐다. 회장님이 유리한 결론을 내줄 '재판부 고르기'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는 대목이다.

여느 변호사들은 매년 있는 2월 법원 정기인사 직후 바뀐 재판부 면면을 살피느라 분주하다. 재판부 성향에 따라 유불리가 좌우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작위 전자 배당되는 재판부 배당은 피고인이나 변호사의 몫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이 회장님은 법테두리 내에서 주도면밀했다.

일단 두 회장님이 내세운 전략은 먹히고 있는 듯하다. 모호한 태도로 재판을 지연하고 있는 '갑질 회장님'의 재판 내용은 기사 한 줄 나오지 않았다. 대중으로부터 잊히려는 회장님의 재판 전략이 성공하는 셈이다. 입맛에 맞는 '재판부 쇼핑'을 나섰던 회장님 역시 최대한 유리한 여건을 만들고 재판을 시작한다. 대중 앞에서 '죄송하다'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던 모습을 떠올리면 이런 태도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제 두 회장님의 재판 전략이 결국 성공할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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