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지금] 위기의 메르켈, 중도층이 떠나간다

입력 2016-09-26 13:04 수정 2018-02-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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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 세르비아 대사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9월 19일 비장한 모습으로 언론 앞에 섰다. 18일 개최된 베를린 주 의회 선거 패배에 대한 기민당(CDU) 당수로서의 입장 표명과 독일 총리로서 국민에게 직접 자신의 정책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메르켈 총리의 이날 언론 회견은 그동안의 수많은 회견과는 다른 직설적 어법으로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코자 하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여름 이후 독일 정치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난민 문제이다. 메르켈 총리의 난민정책에 대해 야당은 물론 자매정당인 기사당(CSU) 측에서도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메르켈 총리에 대한 지지도는 계속 하락하고 반난민 정책을 추구하는 극우파 정당에 대한 지지도는 계속 상승하고 있다. 9월 초 슈피겔지의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메르켈 총리의 난민정책을 국민의 82%가 반대(28% 완전 반대, 54% 부분적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실시된 메르켈 총리의 지역구가 포함된 메클렌부르크-포어폼머른 주 의회 선거에서 기민당은 19.0%를 얻어 제3당으로 전락하고 극우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단번에 20.8%를 득표하는 결과가 나왔다. 제1당인 사민당(SPD)도 지난 선거에 비해 5.1%포인트 하락한 30.6%에 그쳤다.

9월 18일 실시된 베를린 주 의회 선거는 기존의 양대 정당에 더욱 참담한 결과를 안겼다. 양대 정당인 사민당(21.6%)과 기민당(17.6%)은 선거 역사 이래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고, 극우정당인 AfD는 독일의 수도에서도 단번에 14.2%를 득표했다. 예전과 달리 이번 선거로 베를린 주 의회에는 6개의 정당이 진입하게 되었다. 중도 유권자들이 우측과 좌측으로 이탈한 결과다. 지금까지 사민당과 기민당 간의 대연정 체제였던 베를린에 이제 사민당이 주도하는 좌파당과 녹색당 세 개의 정당이 참여하는 주정부가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 총리는 9월 19일 언론 회견에서 기민당의 선거 참패가 자신의 난민정책과 관련이 있다는 평가와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다. 자신이 지난해 언급했던 “우리는 해낼 수 있다(Wir schaffen das)”는 평소 자신의 정치적 자세이자 목적이며, 난민 문제 관련 사항도 같은 내용이었고 난민 문제를 가볍게 여기거나 도전적인 언급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 82%가 자신의 난민정책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를 언급하며, 난민정책 중 정확히 무엇을 반대하는지 알고 싶다며, 만약 독일에 무슬림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라면 이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정책이지만, 지난해와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라면 자신도 이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난민 상한선을 촉구하고 있는 자매정당인 기사당(CSU)에 대한 답변으로 해석된다.

메르켈 총리는 또한, 독일 정부도 유럽의 많은 국가와 마찬가지로 난민 문제를 오랫동안 ‘더블린 협약’에 의지하며 그리스, 이탈리아 등 지중해에 위치한 난민 유입 국가들에 문제를 떠넘기는 잘못을 저질렀고, 사태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독일에 대량 난민이 유입하는 상황이 발생했으며 따라서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고 정부의 실책을 인정했다. 그런 상황이 되풀이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지금은 팩트보다 감정을 앞세우는 세상이 되었다는 말도 있다며 무조건 “메르켈 사퇴”를 외치는 사람들은 자신이 말하는 모든 내용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지만, 독일의 상황은 분명히 예전과는 달라질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차분하게 대처하는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매우 직설적이고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독일은 2017년 9월 총선을 치르게 된다.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메르켈의 총리직 4선 진출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메르켈 총리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견고했고 당 내외에서 경쟁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대량 난민 유입은 모든 상황을 변하게 했다. 극우파인 ‘독일을 위한 대안’이 2014년 이래 실시된 모든 주 의회 선거에서 승리하며 중도층이 무너지고 있다. ‘독일을 위한 대안’은 현재 독일의 10개 주 의회에 진출하고 있고 앞으로 실시될 주 의회 선거와 연방하원 총선에서도 의회 진출이 확실시되고 있다.

EU 회원 국가에 난민을 분배해야 한다는 메르켈 총리의 정책은 대부분 EU 회원국의 반대에 부딪치고, 특히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등 동구권 국가들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난민 문제는 유럽 각국의 극우파들에 날개를 달아주는 이슈가 되고 있고, 메르켈 총리의 EU 내 입지도 도전받고 있다.

의원내각제인 독일에서 의회에 진출한 정당은 정책 결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전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소수정당의 난립과 이로 인한 나치 독재의 출현을 경험한 바 있는 독일은 5% 득표에 미달한 소수정당의 의회 진출을 차단하고 있다.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 건국 이후 계속 3개 정당(사민당, 기민/기사 연합, 자민당)만이 연방하원(Bundestag)에 진출하며 3당 체제를 유지하였으나, 환경문제를 앞세운 녹색당이 1980년 하원에 진출하였고 1990년 동·서독 통일 이후에는 옛 동독에 기반을 둔 공산당 후신인 좌파정당이 하원에 진출하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중도진보를 대변하는 사회민주당(사민당, SPD)과 중도보수를 대변하는 기독교민주연합(기민당, CDU)은 각 40% 내외의 득표율로 연방하원에 진출하며 다른 소수 정당과 함께 연립 정부를 구성하였다. 통일 직후인 1990년 12월에 실시된 선거에서 양대 정당의 득표율 합산은 77.3%에 달했다.

그러나 통일 후유증에 대한 반감과 함께 2000년대 들어서는 기존 양대 정당에 대한 지지도는 점점 낮아지고 극좌와 극우의 소수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지는 추세로 변했다. 현재 독일 연방정부는 양대 정당에 의한 대연정(기민/기사 연합과 사민당) 체제이다.

양원제인 독일에서 연방상원(Bundesrat)은 독일 16개 주에서 인구 비례에 따라 대표를 파견해 구성된다. 인구가 적은 주는 최소 3명부터 시작하여 인구가 가장 많은 주는 6명까지 대표를 상원에 파견한다. 각 주 정부에서 대표를 선출하기 때문에 정당의 주 의회 진출과 주 정부 참여는 연방상원 진출과도 직접 연결된다.

연방국가인 독일에서 상원은 하원과 연방 법률 제정권을 공유한다. 하원에서 의결된 모든 법률안은 상원에 제출되며, 상원 동의가 불필요한 법률안에 대해서도 상원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독일에 극우파 정당이 지지를 확대하고 모든 주 의회에 진출하는 현상은 독일 지방정부뿐만 아니라 연방정부의 정책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최근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 의하면, 현재 4개의 정당이 진출하고 있는 연방하원에 2017년 총선에서는 6개 정당이 진출할 것으로 예측된다. 기존 양대 정당인 사민당과 기민/기사 연합은 20∼30%의 저조한 지지로, 좌파에서 이제는 중도좌파로 취급받는 녹색당(Grune), 중도보수인 자민당(FDP), 극좌파인 좌파당(Die Linke)과 극우파인 ‘독일을 위한 대안’이 연방하원에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세는 국민의 다양한 의견이 대변된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정부 구성과 정책 추진에는 어려움이 발생할 수도 있다. 두 개의 정당으로 과반수 확보가 어려워 세 개의 정당이 정부를 구성해야만 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정부 구성에는 참여하는 정당 간의 정책 조율이 필요하기 때문에 성격이 서로 다른 세 개 정당 간의 정책 합의는 만만치 않을 것이며 강력한 정부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정부 구성은 득표율에서 제 1당이 된 정당에 우선권이 주어지지만, 정부 구성에 어려움이 있을 경우 제2당에 정부 구성권이 넘겨질 수도 있다.

메르켈 총리는 아직까지 내년 총선에서 총리직에 도전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총리직 출마에는 자신이 속한 기민당뿐만 아니라 자매당인 기사당의 지지가 절대 필요하나, 그동안 메르켈 총리의 난민정책을 반대하는 기사당 측이 메르켈 지지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이제 메르켈 총리가 난민정책에 대한 실책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상황에서 기사당의 메르켈 지지 발표가 있을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떠나가는 중도층을 어떻게 붙잡을 것인가는 정치가들의 숙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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