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한진해운 사태를 둘러싼 비겁한 변명들

입력 2016-09-12 11:00 수정 2016-09-1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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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년규 부국장 겸 산업1부장

한진해운 사태가 일파만파다. 가뜩이나 얼어붙은 경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국가 신뢰도가 떨어질 것은 명약관화다. 미국에서 스테이오더 발효로 일부 선박이 하역을 마쳤으나, 40여 척의 선박이 여전히 정박하지 못하고 바다 위를 헤매고 있다. 이들 선박에서 짐을 내리는 데 필요한 1700억 원을 마련하지 못해서다.

사태는 심각한데 금융당국과 한진그룹 간의 계속되는 핑퐁으로 물류대란 해법은 미궁에 빠져 있다.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연석 청문회에서 나온 발언은 사태가 왜 이 지경이 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나왔던 발언을 되짚어 보자.

먼저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통해 여러 차례 회의에서 한진 측에 대비책을 요구했지만 전부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한진해운 측이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피해가 속수무책으로 커졌다는 것이다.

한진해운 재무본부장의 발언은 이와 정반대다. 그는 해양수산부와 채권단의 정보 요청에 대부분 협조했고, 물류대란을 막기 위한 자료 요청은 받은 바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현대상선과의 합병 방안을 산은과 검토했으며, 자율협약 조건이 5000억 원 출자, 경영권 포기, 합병 동의였다”고 밝혔다.

재무본부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진해운은 약속을 모두 지킨 셈이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직전에 한진그룹은 4000억 원 지원에 1000억 원 추가출자 방안을 제시했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경영권을 내놓았으니 자율협약 조건을 성실히 이행한 것이다. 그런데도 채권단은 담보가 없으면 자금 지원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 한진해운을 결국 법정관리로 넘겼다.

하지만 임 위원장의 지적대로 한진해운이 해수부나 채권단에 화주와 운송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면 한진해운은 파렴치한 회사가 된다. 자금 지원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앙갚음으로 사태가 확대되도록 유도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청문회는 물류 대란을 ‘네 탓’으로 치부하려는 치졸한 변명만 내놓는 자리였다. 사태의 해결 방안 논의는 뒷전이었다. 금융당국과 한진 측의 말이 다르다는 점에서 오히려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구심마저 든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다음 날 열린 연석 청문회에서 “한진해운은 담보가 있어야 지원 가능하다”는 원칙론을 내세웠다. “(한진해운을 회생시킬지 청산할지는) 법원이 결정할 문제”라며 청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덧붙였다. 수출기업들의 피해가 속출하는데도 시장논리만큼은 깨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사태를 일으킨 당사자는 할 일 다 했다고 떼를 쓰고 있고, 채권단은 산업은행 자회사가 된 현대상선만 챙기면 됐지 한진해운은 관심 없다는 식인데, 정부 당국은 제3자가 되어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한진해운은 자율협약에 들어간 지난 5월 초부터 4개월 이상의 시간을 소모한 채 핑퐁 게임만 하다 제자리로 돌아왔다.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에 대비한 ‘플랜 B’를 세울 만한 충분한 시간이었는데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금융당국과 한진그룹, 주무부서인 해양수산부의 막무가내가 빚어낸 참극이다.

아직 바다 위를 떠돌고 있는 선박의 짐을 내리는 데 필요한 1700억 원을 누군가는 내야 한다. 담보가 없으면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만 반복하면 영원한 평행선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를 키운 대주주, 채권단, 정부 모두 함께 1700억 원을 책임져야 한다. 최은영 전 회장도 그 책임에서 피해갈 수 없다. 모두 모여 1700억 원을 어떤 비율로 나눠 낼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개그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의 ‘상남자들’ 코너에서 정명훈이 내세우는 논리처럼이라도 책임 비율을 나눠야 한다. 다른 친구보다 많이 먹었으면 돈을 더 내야 하듯이, 책임이 클수록 돈을 더 내놓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조율이 필요하다. 정부가 직접 나서 현금 마련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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