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내가 그린 그림만이 내 그림인가?

입력 2016-06-14 10:32 수정 2016-06-1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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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조영남 대작논쟁’에 관한 글이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결국 쓰게 되었다. 그것도 왜 망설였고, 왜 쓰게 되었는지를 쓰기로 했다. 나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이다.

글을 망설인 큰 이유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화가가 아님은 물론 평론가도 컬렉터도 아니다. 그림을 보고 그림 이야기하는 것을 꽤 좋아하지만 ‘대작논쟁’에 입을 열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또 하나, 사건의 진상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뒤에서 다시 말하겠지만 그림을 제3자에게 그리게 한 행위 그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공장에서 만든 소변기를 작품으로 내놓은 마르셀 뒤샹 이야기는 이미 고전이다. 또 앤디 워홀이나 데미안 허스트 같은 개념미술 작가들은 자신들은 손도 대지 않은 작품들을 수억 원이나 수십억 원에 팔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펄쩍 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림과 미술은 손끝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손끝에서도 나오지만 머리나 가슴에서도 나온다. 내 손길이 닿지 않았다고 미술이 아니고 내 그림이 아닌 것은 아니다.

문제는 조력의 내용이다. 조영남의 경우 화투 등을 그리겠다는 생각이 남의 것이라면, 또 어떤 구도로 어떤 오브제를 써야 하겠다는 생각 등이 모두 남의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그의 생각을 보기 위해 그가 쓴 책들을 읽었다. 시인 이상(李箱)을 해석한 ‘李霜은 李霜이상이었다’, 종교적 고민을 담은 ‘예수의 샅바를 잡다’, 그리고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등이다. ‘조영남다운’ 다소 튀고 엉뚱한 부분들이 있기도 하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생각들이었다. 그의 그림이 그의 가슴과 머리에서 나온 그의 그림일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알 수 있나? 진상이 드러날 때까지 말을 아끼는 수밖에.

망설였던 이유는 또 있다. 100% 자신이 그린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속였는지 여부도 아직은 알 수가 없다. 만일 그랬다면 ‘사기’가 된다. 법률 이전에 도덕적 문제이자 신뢰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이 또한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더욱이 그의 주변 사람들이나 전시기획을 하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면 더욱 그렇다.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은 게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의도적으로 숨기지도 않은 게 되기 때문이다. 어느 쪽일까? 이 역시 아직은 알 수 없으니 입을 함부로 열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글이라도 쓰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다. 흔히 있는 저녁자리나 술자리에서의 이야기들이 불안해서이다. “직접 그리지 않는 자가 무슨 화가야?” “내가 아는 화가는 붓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목숨 걸 듯 해. 그런 화가가 진짜 화가지.”

틀린 말 아니다. 화가는 되도록 자신의 혼을 담은 칼질이나 붓질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정상이라는 생각은 곤란하다. 집에 걸려 있는 그림 중에는 꽤 이름 있는 젊은 화가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그린 것이 있다. ‘대작’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물감을 뿜어내는 프린터기로 찍은 그림이다. 이 화가는 화가가 아니고, 이 그림은 그의 그림이 아닌가?

세상이 변하고 있다. 기술인지 예술인지 분간하기 힘든 융복합의 작품들이 나오고 있고, 사람이 작가인지 기계가 작가인지도 모를 작품들도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과 창의의 세계를 가져다줄 것이다.

국가든 사회든 ‘진정한 화가’와 ‘진정한 그림’에 대한 정형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대작을 시키는 화가는 그런 화가대로, 그렇지 않은 화가는 그런 화가대로 좋은 평판이든 나쁜 평판이든 얻어 가면 된다. 대작이 미워, 아니면 인간 조영남이 미워 직접 그리는 그림만이 그림이라 한다면 앤디 워홀과 데미안 허스트 같은 작가는 영원히 나오지 못할 것이다.

조영남을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잘못은 잘못대로 따지되, 이 사건이 우리를 더 좁은 세계로 끌고 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번 사건이 오히려 창작의 새로운 형태를 인식하고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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