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칼럼] 신영복 선생이 알려준 것

입력 2016-01-1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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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15일 타계한 쇠귀 신영복 선생의 삶은 지식인의 의미와, 인간의 품격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그의 삶은 27년간의 성장·학습기, 20년간의 옥살이, 출감 이후 27년 남짓한 활동기로 요약된다. ‘나의 대학시절’이라던 감옥에서의 사색을 통해 새로 태어나 ‘너와 내가 만나는 곳’이라던 ‘바깥’에서 가르치며 배우며 교학상반(敎學相伴)의 삶을 이어갔다.

그를 아는 이들은 사색과 성찰, 더불어 살기를 일깨워준 ‘시대의 스승’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말과 행동을 하나로 보여준 분이라는 것이다. “내 인생의 등대는 별이 되었다”는 한마디로 그의 타계를 슬퍼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평가는 그의 반듯하고 부드러운 품격에 관한 것이다. 그는 극한상황에서도 인간의 품격을 끌어올리는 전형을 보여주었고, 존재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됐던 인물이다.

깊은 사색과 성찰로 빚은 그의 문장은 감동을 준다. “피아노의 흑과 백은 반음의 의미를 가르친다. 대립보다는 동반을 가르친다.”, “징역살이에서 터득한 인간학이 있다면 모든 사람을 주인공의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유심히 본다. 그 사람의 인생사를 경청하는 것을 최고의 독서라고 생각했다.” 이런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는 어깨동무체로 유명한 붓글씨를 통해서도 배려와 조화의 ‘신영복미학’을 일구었다. “붓글씨를 쓸 때 한 획의 실수는 다음 자로 보완하고 한 자의 실수는 그 다음 자로 감싼다. 한 행의 결함은 그 다음 행의 배려로 고쳐나간다. 이렇게 얻은 한 폭의 서예작품은 실수와 사과와 결함과 보상으로 점철돼 있다.”

원래 대가는 겸손하고 온유하다. 배려와 조화를 지향한다. 그보다 더 길게 27년 이상 옥살이를 했던 넬슨 만델라도 놀라울 만큼 온유하지 않았던가. 만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대단한 인간이 아니다. 노력하는 노인일 뿐이다.”, “화해는 정의롭지 못했던 과거의 유산을 고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선의 무기는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이 즐겨 읽었던 노자 도덕경 52장에 “작은 것을 보는 것을 눈이 밝다고 하고,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을 강하다고 한다”[見小曰明 守柔曰强]는 말이 있다. 부드러울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다.

그리고 진정한 지식인은 확고한 자신감과 권위로 충일한 사람이 아니다. 도덕경 15장에 이런 말이 나온다. “도를 체득한 사람은 (중략) 겨울에 강을 건너듯 머뭇거리고, 사방의 이웃 대하듯 주춤거리고, 손님처럼 어려워하며, 녹으려는 얼음처럼 맺힘이 없고,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소박하며, 계곡처럼 트여 있고, 흙탕물처럼 탁하다.”

진정한 지식인은 머뭇거리고 주춤거리고 어려워한다. 흙탕물처럼 모든 걸 받아들인다. 그리고 무엇인가 두려워 떠는 존재다. 신영복 선생이 소개해 유명해진 역사학자 민영규(閔泳珪·1915~2005)의 ‘예루살렘 입성기’에 나오는 ‘지남철’을 읽어본다.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우리는 그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한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남철은 점차 사라져간다. 데이비드 브룩스의 ‘인간의 품격’이라는 책이 국내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깊이 있는 인격이 점차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는 더하다.

잔챙이 찌질이 무녀리 못난이들밖에 없는 것 같은 한국 사회, 앵앵거리며 분주하게 날아다니는 쉬파리처럼 사소한 이익에 목숨을 거는 승영(蠅營)의 무리들로 시끄러운 이 비루하고 용렬한 시대에, 구차스럽지 않은 선비의 넉넉한 모습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우리는 신영복 선생에게 큰 빚을 졌다. 그의 말대로 “인간이 처음이며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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