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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 日 수출규제, 우리 경제 구조와 정책 변화의 전환점 될 것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일본이 우리나라를 전략물자 ‘수출우대국 목록’(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면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에서 시작된 일본의 수출규제가 1100여 개 품목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화이트리스트 제외에 따라 영향을 받는 품목의 규모가 대일 수입액의 절반이 넘는다고 추정한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어디까지 확대되고 얼마나 지속되며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관해서는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확실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일본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공급원이라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수입하는 소재와 부품이 어느 날 갑자기 수출규제에 걸려 완제품 생산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보기라도 했는가? 몇 달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사건이 발생하여 우리 경제와 기업의 목을 죄고 있다.

이처럼 취약하게 일본의 수출규제에 노출된 것을 놓고 대기업 잘못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대기업들도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기업의 입장에서 품질이 검증된 제품이 있으면 국산이든 외국산이든 갖다 사용하면 된다. 우리 중소기업이 개발한 제품이 있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사용해온 일본 제품이 있는데 굳이 이를 외면하고 새로운 제품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

원래 기업 구매에서 독점적 공급선은 두지 않는 법이다. 기회주의적 배신행위에 노출될 위험이 커지고 납품 품질에 이상이 있거나 관계가 악화해 공급이 중단되면 생산라인 전체가 치명적인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애플과 같은 글로벌 기업의 경우 산업재 구매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대체공급선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성능이 우수하지만 호환성이 결여되어 시장에서 채택되지 못해 사장된 산업재는 수없이 많다.

일본에서 수입해온 소재와 부품을 대체하는 지속가능하고 유효한 방안은 국내 소재·부품 산업의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것밖에 없다. 일본 이외의 제3국으로 전환하는 것이 고려되고 있지만, 물류비가 높고 또 일본과 같이 그 나라의 정치적 변동에 따른 리스크가 존재한다. 대기업이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그러나 수많은 소재와 부품을 직접 개발하고 생산하여 수직계열화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일본에 의존해 온 핵심 소재와 부품을 국내 중소기업으로 다변화하는 과정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이 한 차원 다르게 발전할 것으로 기대한다. 일본의 수입품을 대체하려면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과 협력 개발하고 양산에 필요한 성능 검사와 품질 검증도 공동으로 이행할 유인책이 생기게 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호 호혜적 협업 체계가 확립되고 이에 따라 비용과 리스크를 분담하고 나아가 이익도 공유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것이다. 국내 중소기업 제품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납품단가를 부당하게 인하한 관행도 획기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중소기업의 인식과 역할도 변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일본의 소재·부품 중소기업이 강한 이유는 ‘장인정신으로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모노즈쿠리에 있다. 원가절감이나 수익성 대신 한 우물만 파는 우직함이 답답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제한된 산업재 시장에 완벽한 품질의 제품을 공급하는 것은 장인정신 또는 기업가정신이 충만해야 가능하다. 앞으로는 우리 중소기업도 기술, 품질, 인재 등에 우직할 정도로 투자하여 완벽한 최고의 제품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일본에서 수입해온 1000여 개 소재와 부품 그리고 장비를 대체할 정도로 중소기업을 육성하려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동안 역대 정부가 말로는 소재·부품 산업을 육성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소홀히 하고 박대하여 왔다. 정부의 산업정책과 기업 지원에 있어서 뿌리산업의 중소 제조기업은 혁신산업의 벤처기업에 밀려 소외되어 왔다. 소재·부품 산업은 3D업종, 즉 기피산업으로 치부되어 왔다. 노동과 환경 편향적 정부 정책은 부품·소재 산업의 발전을 막아왔다.

이런 정부의 인식과 정책이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전면적으로 전환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에 정부가 소재·부품 산업의 발전을 위해 대대적 지원을 계획하고 대·중소기업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긍정적이다.

뿌리산업의 기초가 빈약한 혁신성장은 사상누각이다. 바로 우리의 현실이 이를 절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이제 기본으로 돌아가 소재·부품 산업의 중소기업을 튼튼하게 육성해야 할 때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수출규제를 고맙게 생각하자.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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