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영의 異見] 돈과 정의

입력 2019-07-07 18:12 수정 2021-09-0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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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1부 차장

“돈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Pecunia non olet).”

로마 제국의 아홉 번째 황제 베스파시아누스가 재정 건전화를 위해, ‘오줌세(vectigal urinae)’를 부과하자 반대파들은 비웃었다. 아들 티투스마저 “냄새나는 오줌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반발했다.

그러자 황제는 오줌세로 거둔 금화를 티투스의 코끝에 들이대며 “이 금화에서 냄새가 나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냄새는 나지 않았고, 황제는 “돈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맞는 말이다. 돈은 그 자체일 뿐이며 가치가 원천에 의해 더렵혀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돈을 다루는 자본시장은 어떨까. 과연 자본시장에서 돈의 ‘순수한 가치’가 더럽혀지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혹자는 말한다. 돈에 정의는 없다고. 이 역시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정의’가 없다고 해서 돈을 정의롭게 다루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국민연금이 YG엔터의 지분을 기존 5.66%에서 6.68%로 늘렸다고 공시했다. 국민연금의 공시 의무가 발생한 시점은 5월 17일, 버닝썬 사태로 주가가 크게 하락한 시점이었다.

YG엔터의 주가가 실적 대비 크게 떨어졌다는 판단에서 투자에 나선 것으로 보이지만 씁쓸함을 감출 수는 없다. 투자에 있어 실적 등 재무적 판단이 우선 고려돼야 하는 것은 분명 맞다.

그러나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이 각종 논란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기업에 투자를 지속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에 대해서는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논란이라는 것도 소속 연예인의 마약 의혹과 회사 대표의 성접대 의혹 등 윤리의식과 도덕성이 심각히 결여된 중범죄 수준이다.

최근 10년 사이 유럽연합(EU), 미국,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수많은 나라들이 연기금을 통해 맹목적 수익 추구 대신 공익적 요소 등 비재무적 기준을 고려해 투자하는 자금 운영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부분이다.

비단 국민연금만의 문제는 아니다. YG엔터를 커버하는 증권사들도 최근 일련의 사태를 그저 지나가는 ‘이벤트’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심지어 한 증권사는 이번 사태를 ‘노이즈’로 표현하며 기업의 손상된 이미지가 회복될 이후의 성장성에 초점을 맞출 것을 조언했다.

한 유명 정치철학자는 “경제학자들은 시장은 교환되는 재화(돈)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시장은 흔적을 남긴다. 때때로 시장가치는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비시장 가치를 밀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변질된 시장 가치에 돈의 가치마저 흔들리고 있다. 시장에 끊임없이 ‘정의’를 요구해야 하는 이유다.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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