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일감 몰아주기의 중심에 선 건설사들

입력 2019-04-0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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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영 자본시장1부 기자

“아니 회장님, 꼭 센터를 까 드려야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아시겠어?”

영화 부당거래(감독 류승완)의 한 장면이다. 아파트까지 뇌물로 줬는데 돌아오는 이익이 없다는 건설사 회장의 불만에 검사는 회사의 비위를 조사하겠다며 겁을 준다. 결국 회장은 꼬리를 내리고 검사는 좀 전에 받은 명품시계만 챙겨 나간다. 주말 골프 약속도 잊지 않는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지만 일부 건설사는 공사현장만큼이나 재무경영 현황에서도 제법 먼지를 일으킨다. 특히나 건설업계엔 유독 아버지와 아들 관계가 돈독해 보인다. 자식 사랑 유별난 건 어쩔 수 없다지만 자식에게 회사를 주고, 일감 대부분을 몰아주고, 배당금은 후식으로 챙겨준다. 손녀 손자는 또 왜이리 많은지.

취재 중 있었던 일이다. 시행사업을 해오던 모기업 관계자에게 시공사인 자회사에 대해 물었다. 십수년을 거래해 온 만큼, 모기업에 자회사 근황을 물은 것이다. 돌아온 답은 의외로 “저흰 다른 회사입니다”였다. 물론 편한 질문이었다면 대답이 달랐을지 모르지만 그때 한 질문은 자회사의 자립성 여부였다. 언제까지 내부거래로 연명할 거냐는 물음에 “우린 하는 일이 다르다”며 선을 긋는다. 내부거래가 80~90%인 이 ‘돈’독한 부자 관계도 기자 앞에선 생판 남이다.

건설업계엔 시행-시공이라는 특유의 관계가 성립한다. 일종의 투수와 포수의 사이로 볼 수도 있는데, 시행을 던지면 시공으로 마무리하는 꼴이다. 기업 입장에선 계열사들이 많은데 굳이 이 둘이 다른 회사일 이유가 없다. 그렇게 1구, 2구, 100구 넘도록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오너가의 부도 축적된다. 야구와 다른 점은, 주고받을수록 지치는 선수들과 달리 오너 일가는 점점 힘이 강력해진다는 것이다.

당국도 주목하고 있었다. 공정위는 지난달 중견기업 일감 몰아주기 조사를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10월엔 대기업 오너일가의 사익편취 규제 대상을 발표하며 내부거래 현황을 공개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상위 3개 기업에 건설사도 포함돼 있었다. 언급했던 시행-시공 관계가 문제였다. 뿐만 아니라 업종별 내부거래 금액 순위에서 제조업 다음으로 높은 게 건설업이다. 특히 건설사의 경우 건설업에만 포함된 게 아니라 전기통신설비 사업에도 이름을 올리는 등 내부거래 명단에 자주 등장했다.

이제는 건설사들도 먼지를 털어내는 작업에 동참해야 할 때다. 계열 분리 작업을 비롯, 오너 개인 지분 축소와 자회사의 자립성 강화 등에 힘쓸 필요가 있다. 영화 속 검사가 기업 센터를 운운하기 전에, 스스로 센터를 당당하게 열어 놓을 수 있을 만큼의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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