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보는 경제] 베트남의 ‘도이머이’, 거저 된 것이 아니었다

입력 2019-02-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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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훈 시인·BCT 감사 

1986년 12월 15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중요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베트남 6차 공산당 전당대회가 열린 것이다. 3일간의 토론과 회의 끝에 서기장 쯔엉찐은 대변화를 선언했다. 사회주의 경제의 시장경제로의 전환, ‘도이머이’의 채택이었다.

그러나 도이머이는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었다. 베트남의 국부 호찌민이 1969년 사망하자 레주언이 서기장이 되었다. 레주언은 1975년 남베트남을 해방하고 통일을 이루었다. 북부 정권은 남베트남의 급속한 사회주의화를 추진하였다. 집단농장을 형성하고 농업생산 목표를 강요하였다. 가격을 통제하고 식량을 배급했다. 남베트남에 엄격한 계획경제 시스템을 적용한 것이었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헤게모니 쟁탈 과정에서 소련과는 우호적이었고 중국과는 관계가 악화되었다. 화교를 추방하고 1978년 중국이 지원하는 캄보디아를 침공하여 군대를 주둔시켰다. 1979년에는 중국이 국경을 침범하여 중월전쟁이 발발하였다.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사실상 패배한 미국은 외교적, 경제적 고립을 강화했다.

폐허가 된 국토에 외부의 지원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업의 집단화에 대한 남부 농민의 반발이 거셌다. 자영을 하던 농민들이 집단농장에서 태업을 일삼았고 수확한 쌀을 감추었다. 생산성이 곤두박질쳤다. 도시에 식량이 공급되지 않아 아사자가 속출했다. 의욕에 찬 계획경제는 대실패로 귀결되었다.

전통적으로 베트남은 농업국가, 메콩강 하구 기름진 삼각주는 연중 4모작이 가능한 곡창지대다. 그런 나라에서 쌀이 부족해 굶어죽는 사람이라니, 통일정부는 긴장했다. 통일 후 10년이 지나도록 국민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1979년 농산물 거래를 일부 자유화하고 1985년에는 가격통제를 폐지했지만 별무소득, 게다가 대규모 인플레이션까지 발생하여 국민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1980년대 들어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당 내부에서 일어났다. 중국에서는 1978년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덩샤오핑이 개혁을 시작하여 성과를 내고 있었다. 소련에서는 1985년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이 되어 개혁개방을 부르짖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1986년 7월 레주언이 79세로 사망했다. 서기장직은 쯔엉찐이 승계했다. 쯔엉찐은 개혁을 주장하는 소수파 실용주의자였다. 12월 당 대회까지 5개월 동안 개혁개방 노선 투쟁을 주도했다. 쯔엉찐은 개혁에 반대하는 보수파 원로들에게 말했다. “만약 호찌민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요?”

호찌민은 국부(國父)였다. 평생 독신으로 베트남의 독립과 사회주의 실현에 일생을 바친 사람. 그는 사회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였고, 인민을 배불리 먹이는 것을 무엇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실용주의자였다. 사회주의도 인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호찌민의 생각이라고, 쯔엉찐은 판단했다. 그리고 보수파 원로들을 설득했다. 개혁개방을 해야 한다고. 쯔엉찐은 원래 마오쩌둥 추종자로 혁명주의자였다. 그러나 지속되는 경제난국에 생각을 바꿔 개혁주창자가 되었다. 12월 당 대회에서 그는 자신의 생각을 실현시켰다. 금기시되던 ‘시장경제’라는 말을 공식석장에서 처음 꺼냈다. ‘도이머이’선언이었다.

원로 보수파를 퇴진시키는 일도 빠뜨리지 않았다. 본인이 솔선했다. 쯔엉찐을 포함 팜반동, 레둑토 등 원로 3인방이 당 고문으로 물러앉았다. 그리고 개혁론자인 응우옌반린을 서기장으로 선출했다.

도이머이는 베트남의 적극적인 의지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간이 걸렸다. 개방을 표방했지만 외국인의 투자가 순조롭지 않았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관건이었다. 우리나라와는 1992년 수교하였다. 1995년이 되어서야 미국과 수교하였다. 도이머이 이후 30년 동안 베트남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6% 후반, 도이머이 시작 당시 100달러 이하였던 1인당 GDP는 2018년 2587달러나 되었다. 개혁개방의 성공 모델이 된 것이다.

베트남 하노이가 세상의 이목을 끌고 있다. 오늘과 내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하노이에서 만나는 것이다. 북한은 과연 ‘도이머이’를 추진하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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