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도의 세상 이야기] 무엇을, 어떻게, 왜

입력 2019-01-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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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객원교수 · 전 산업통산자원부 차관

세계인을 하나로 모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지 어느덧 일 년이 지났다.여자 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부터 컬링에서 팀김의 놀라운 활약, 이상화와 고다이라 선수와의 경기 후 뜨거운 포옹 등 수많은 각본 없는 감동의 드라마가 우리의 심금을 울렸다.그러나 성과 중심의 훈련 과정에서 지도자들의 일탈 등 우리나라 스포츠계가 지닌 고질적인 문제들이 노출되기도 하였다.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오던 우리 사회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과정이나 방법은 부차적이란 성과 위주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는 계기를 맞이했다. 무엇이란 성과를 내는 데 집중했지 ‘왜, 그리고 어떻게’ 할 것인지 소홀히 다루어진 결과이다. 여기서 ‘왜’란 지금 이 일을 해야 하는 정당성 또는 우선순위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는 목표 달성을 위한 의사결정의 과정이다.

사실 예전에 운동을 배우면 코치들이 ‘왜’와 같은 이론적 설명이나 ‘어떻게’ 같은 과정보다는 먼저 시범을 보이고 그냥 따라 하라고 해서 어려움을 느낀 적이 많았다.그런데 지금은 ‘왜’를 잘 설명하고 연습하는 방식까지 상세히 알려주어야 제대로 된 지도자가 되고 선수들도 마음으로 따르게 되어 오래간다. 격세지감이다.

필자가 사회 생활을 하면서 취미로 처음 배운 운동은 테니스였다. 1980년대 마을 빈 공터에 테니스 코트가 많이 있었고 여기서 테니스를 배웠다. 물론 내 목표는 테니스 선수처럼 훌륭한 플레이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충분히 테니스 원리와 에티켓을 공감하고 남들과 즐겁게 공을 네트 너머로 주고받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폼은 테니스를 즐겁게 치기 위한 기본이다. 동네에서 아무리 승률이 높아도 폼이 너무 나쁘면 환대받지 못하고 근육의 무리가 와서 오래가지도 못하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다.

회원 등록을 하니 코치가 폼을 만들어 주고 나서 공을 반대편 네트 너머에서 주며 치라고 한다. 정신 없이 공을 받아 치는데 갑자기 ‘그렇게’ 치라고 한다. 볼을 쫓아 다니기에 바쁘니 ‘어떻게’ 친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 치라니 난감하다. 어떻게 해서 그런 폼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니 코치가 떠나면 이내 그 폼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어쩔 수 없이 책을 보며 원리를 자습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운동 신경이 별로 없는 필자로서는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이런 상황은 운동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비일비재하다. 절대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바쁘게 살아온 우리 세대의 인생도 유사하다. 열심히 해서 선진국 못지않게 살 만하게 되었는데 여전히 바쁘고 행복하지 않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역사상 유례없이 짧은 기간에 절대 빈곤 국가에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소외된 사람이 많고, 문화적으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다.

하버드대 경영학 교수인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의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책의 내용이 생각난다. 그는 인생의 행복을 사회생활에서 출세보다 오히려 가정이나 친구들과의 원만한 관계에서 찾는다. 특히 성공적인 자녀 교육을 위해 부모는 ‘무엇을’ 주려고 노력하기보다 ‘어떻게 그리고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많은 정보와 지식을 주려고 하지만 자녀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에 대한 이해가 되어야 비로소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는 것이다.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강요하면 오히려 부작용만 커진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왜 그리고 어떻게’에 대한 이해가 확고해야 홀로 서기가 가능하단다.

우리는 지난해 수출 6000억 달러를 돌파하고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이르는 선진국이 되었다. 놀라운 성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과거의 선진국을 추격하던 패러다임을 벗어나 혁신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데 모두가 공감한다. 그러나 ‘어떻게 그리고 왜’에 대해서는 여전히 큰 숙제이다. 여기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 보니 갈등과 대립이 일상화되어 안타깝기까지 하다.

조직 내에도 이런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다. 필자의 세대들은 내 일이 끝나도 같은 조직의 동료가 야근을 하면 함께 남아 날을 새는 것을 당연시하였다. 요즘 세대들은 다르다. 그런 경우 매우 힘들어하고 심지어는 불만을 강하게 표출하기도 해서 기성세대들과 마찰을 빚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세대는 그 일이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을 공유하면 스스로 알아서 근무 시간과 관계없이 열심히 즐겁게 일을 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왜’ 해야 하는지 공감하면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친구들이 점점 많아진다.

과거 우리나라 운동 선수들은 어린 나이에 금메달 획득과 같은 성과를 거둔 후에 목표 의식이 사라지고 운동에 흥미를 잃어 수명이 매우 짧은 경우가 많았다. 그에 반해 선진 외국의 프로 선수들은 현역 생활을 오래하고 그 후에도 훌륭한 지도자나 해설자로 성장한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성과 일변도의 엘리트 스포츠가 아닌 ‘어떻게 그리고 왜’를 중시하는 생활 체육으로 자리 잡을 때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과 경제 운용도 성과 못지않게 나와 국민 다수의 행복을 위해 ‘어떻게 그리고 왜’에 대해 보다 고민하는 방식으로 바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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