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문재인 정부는 웃지 말라

입력 2018-10-16 06:00 수정 2018-10-1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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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아아, 애석하구나. 낮으면 낮을수록 눈에 잘 띄는 진솔한 민정(民情)을 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알려줄 수 없으니…”, “우리 관리들이 날로 늘어나 세상이 더 괴로워지고 우리 관리들의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백성들이 더 곤궁해진다면 세상 사람들이 어찌 우리를 좋게 볼 것인가?”, “높이 승진했다고 자랑하고 거만하게 굴면 죽은 뒤 부끄러움을 남기게 될 것이다.”, “반성하면 반성할수록 부끄러워 견딜 수 없다.”

중국 관료들의 지침서라는 ‘신음어(呻吟語)’에 나오는 말이다. 명나라 때 여곤(呂坤)이 고급 관료로서의 고충을 기록한 글이 ‘신음’인 이유는 고위 공직자라면 맡은 일과 책임이 무거워 늘 힘겨워하고 앓아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고민하고 괴로워하면서 혼자 읊조리는 벼슬아치들의 신음은 일반인들과의 공감과 소통을 통해 그 사회의 병을 치유하고 예방하는 기능이 있다.

나라를 맡거나 고위 공직에 앉은 사람은 여위는 게 정상이다. 올곧은 선비나 청백리에 대해서는 “몸은 옷을 이기지 못할 듯하고 말은 입 밖에 나오지 못할 듯했다[身若不勝衣 言若不出口]”는 ‘회남자’의 표현이 흔히 인용돼왔다. 경건 신중 겸손을 강조한 이 말은 조선의 고매한 선비들을 칭탄(稱嘆)할 때도 자주 쓰였다.

국정을 맡은 사람은 제갈량이 남긴 말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後已)’, 몸 굽혀 온 힘을 다해 나라에 이바지하며 죽은 후에야 그만둔다는 자세를 지향해왔다. 말년이 엉망이었던 당 현종도 제대로 정사를 돌볼 때에는 ‘아척비천(我瘠肥天)’, “내가 여위더라도 천하는 살찔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런 고전의 언어에 견주어 보면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는 신음하고 여위는 사람은 찾기 어렵고 다들 즐거워만 보인다. ‘정권을 잡은 게 이렇게 좋을 줄이야’라는 표정이라면 너무 심할까. 이 정부의 사람들은 잘 웃고, 그들의 회의는 동아리 선·후배 모임 같다. 이미 20여 년 전에 “니, 장관 자리가 얼매나 좋은지 아나?”라고 했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명언’이 자꾸 떠오른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정치활동이든 경제정책이든 이념적 원리주의와 편 가르기에 매몰된 채 그 잘못과 한계를 모르는 것 같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정책에서는 경세제민(經世濟民)과 거리가 먼 길을 잡아 국민과의 괴리가 큰데도 방향 전환과 수정의 기미가 없다. 소득주도성장으로는 부족하니 이에 집착하지 말고, 규제개혁을 통해 기업 투자를 유인하고 노동개혁을 통해 노동 유연성을 높이라는 충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달라지지 않는다.

일자리가 없어 청년들은 절망하고 집값은 널뛰고 취업자는 줄어들고 자영업자들은 신음하고 있는데, 그 고통을 모르는 것일까. 소수 기득권 노조에 끌려 다니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고용이 악화한) 하반기부터 가슴에 숯덩이를 안고 사는 것 같다”는 사람(김동연 경제부총리)도 있지만, 그 숯덩이는 정권 내부에서 저마다 피하고 돌리는 폭탄처럼 보인다.

정치와 인사에서는 ‘캠코더’라는 내 사람, 우리 편만 챙기고, 무심하고 부주의하게도 툭하면 야당과 국회의 자존심을 긁고, 적폐를 청산한다면서 새로운 폐단을 쌓아 5·16 이후 구악을 일소한다며 오히려 신악을 생산했던 잘못을 답습하고 있다. 파리에서 동포간담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을 들어준 교민들에게 고마움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언제까지 편을 갈라 촛불의 고마움을 되뇔 것인가.

게다가 여당의 대표는 보수의 궤멸을 지향하면서 향후 20년 집권을 외치더니 최근엔 50년 집권론으로 ‘우리끼리’를 더욱 공고하게 다지고 있다. 집권과 정권 연장은 의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국민의 신임과 지지가 없으면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이를 모른다면 무지이지만 모르지 않을 테니 독선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편 가르기의 폐해는 정계는 물론 문화예술계, 언론계 등 사회 각 부문에 심각하고 깊은 상처를 내고 있다. 우리만이 옳고 정의라는 미망(迷妄)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라를 어떻게 끌어가야 좋을지, 웃지 말고 즐기지 말고 고민하고 궁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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