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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70년 恨 서린 제주 동백꽃

제주의 동백꽃은 곱디곱다. 수줍어 볼이 빨개진 소녀의 얼굴 같다. 그래서일까. 사월 따뜻한 봄날에 갑자기 ‘툭’ 하고 꽃이 통째로 떨어지면 제주도민들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다. 한창 예쁠 때 한순간에 땅에 떨어져 나뒹구는 모습이, 그 옛날 차갑게 얼어붙은 땅 위에 스러져간 ‘금쪽같은 내 새끼’ 같아서이다. 아기도 소녀도 소년도 청년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군복 입은 살인마들’에게 동백꽃처럼 소리 없이 스러졌다. 남은 이들은 가슴에 시뻘건 멍이 든 채 ‘빨갱이’로 몰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 세월이 무려 70년이다.

“속슴하라(‘괜히 말하지 말아라’라는 뜻의 제주 방언).” 제주 사람들은 한(恨)을 최소화하기 위해 입을 닫았다. 그렇게 영원히 묻힐 뻔했던 4·3(사태, 사건, 민중 항쟁, 민주화 운동 등 공식 명칭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은 문학으로 되살아났다. “아니우다. 그대로 그냥 놔두민 이 사건은 영영 매장되고 말거우다. 앞으로 일이십 년만 더 있어봅서. 그때 심판받을 당사자도 죽고 없고, 아버님이나 당숙님같이 증언할 분도 돌아가시고 나민 다 허사가 아니우꽈? 마을 전설로는 남을지 몰라도.” (현기영, ‘순이삼촌’ 중에서)

얼마 전 제주시가 4·3 70주년을 맞아 진행한 전국 언론인 초청 팸투어를 다녀왔다. 4·3평화공원, 섯알오름학살터, 진지동굴, 고사포 진지 등을 돌아보며 그날의 처참함과 아픔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의 열한 살(현재 여든한 살) 홍춘호 소녀에게, 그가 겪은 이야기를 들을 땐 가슴이 미어져 꾹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울분을 터트리지 않고 오히려 간간이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그날을 떠올리는 홍 할머니가, 아니 열한 살 소녀가, 듣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렇게 제주도민들은 ‘육지것’들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깊은 상처와 분노를 이해와 용서, 관용과 공존으로 승화시켰다.

잃어버린 마을의 이름들은 4·3 이전의 평화로운 제주를 보여 주듯 하나같이 예쁘다. 제주 4·3의 참극을 알린 영화 ‘지슬(감자의 제주 방언)’로 다시 조명받고 있는 ‘무등이왓’은 마을의 형세가 춤을 추는 어린이를 닮아 붙은 이름이다. ‘무동동(舞童洞)’으로도 불린다. 500여 명의 주민이 학살당한(남자들은 그때 거의 다 죽었다) 북촌 ‘너븐숭이 마을’의 ‘너븐숭이’는 ‘넓은 쉼터’라는 뜻이다.

또 토벌대가 동굴 입구에 불을 피워 주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다랑쉬굴, 다랑쉬마을의 ‘다랑쉬’는 산봉우리의 분화구가 마치 달처럼 둥글게 보인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도랑쉬, 달랑쉬, 월랑봉(月郞峰)이라고 칭하는 이들도 많다. ‘불카분낭(‘불타버린 나무’의 제주 방언)’으로 유명한 선흘리의 선흘은 ‘서다(立)+ㄴ+흘’의 형태로 이뤄졌다. ‘흘’은 돌무더기와 잡풀이 많은 곳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따라서 선흘곶으로도 불리는 선흘리는 잡풀이 우거진 돌밭 마을이다.

그제 오전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의 가슴에는 동백꽃 배지가 달려 있었다. 진상 규명과 희생자 명예 회복 등 4·3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한 대통령의 추념사에 유족들은 “이제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제주도민은 물론 아픈 역사를 마주한 국민들의 가슴 가슴마다 동백꽃이 활짝 피어났다. 화해와 치유, 그리고 희망의 동백꽃이 만발한 사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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