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사에라] 고난주간

입력 2018-03-2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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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스튜디오/2014.08.07/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기호/스튜디오/2014.08.07/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일요일 저녁, TV를 보고 있던 남편에게 아내가 말했다.

“여보, 저 소원이 하나 있어요.”

남편은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를 보면서 건성건성 대꾸했다.

“뭔데요?”

그들 부부는 신혼 땐 그러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론 계속 서로에게 존댓말을 썼다.

“돌아오는 주일이 부활절이잖아요. 그리고 이제 월요일부터는 고난주간이고요.”

남편은 아, 하고 짧게 신음소리를 냈다. 그는 일 년에 딱 두 번, 부활절과 성탄절엔 빠짐없이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날과, 다시 태어난 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의 아내는 신혼 초 여러 번 남편을 전도하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이후로 그는 예의상 그렇게 일 년에 두 번만 교회에 갔다.

“원래 부활절엔 교회 가는데, 왜요? 그게 뭔 소원이라구요?”

“그게 아니구요… 우리 교회가 고난주간을 맞아서 이번 주 매일 새벽 특별기도회를 하거든요… 거기 당신이랑 갔으면 해서요.”

“새, 새벽이요…? 매, 매일 말이죠…?”

남편은 바로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지지난주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지지난주 그들 부부는 돈 문제로 냉랭하게 지냈다. 막내 처남이 결혼 날짜를 잡았는데, 전세 자금을 구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아내가 은근슬쩍 한 2000만 원만 융통해줄 수 없나, 물었는데, 그는 그냥 못 들은 척해버렸다. 그게 발단이 되어 아내와 말다툼까지 가게 된 것이었다. 아내는, 그의 시댁과 처가를 대하는 보이지 않는 차별에 관해 이야기했고, 이래서 경단녀들이 우울증을 겪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 모든 것을 존댓말로 하다가… 아내는 결국 눈물까지 보였다.

그런 마당이었으니… 이제 겨우 관계가 회복된 상태이니… 아내의 소원을 일언지하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지요, 뭐… 1주일인데… 그렇게 할게요.”

그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언가, 자신에게 진짜 큰 고난이 닥쳐오는 기분이었다.

새벽기도 첫날, 그는 아내와의 약속을 무리 없이 지켰다. 평상시엔 아침 7시에 일어나서 8시쯤 집을 나섰지만, 그날은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나야만 했다.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아침 6시 30분. 30분이라도 더 눈을 붙일까, 생각하다가 그는 그대로 출근길에 나섰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한 출판사 단행본 팀장으로 일하는 그는, 막힘없이 자유로를 달리는 광역버스 안에서 왠지 모르게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뭐야, 컨디션이 더 좋은걸, 내가 원래 아침형 인간이었나? 1주일이 아니고 계속 이 시간에 일어나도 되겠는걸. 그는 알 수 없는 자신감마저 생겼다. 자신이 아예 다른 존재로 바뀐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의 그런 자신감은 출근 이후 팀장회의 시간부터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는데, 지난주 반짝 올라갔던 그들 출판사의 상반기 최대 기대작이 주말을 기점으로 판매량이 형편없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고정 독자도 있는 파워 작가였고, 그에 따른 홍보도 만만치 않게 했는데도 책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그 작가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아예 책을 사지 않는데요…”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마케팅팀장은, 마치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예수의 열두 제자처럼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들의 사장은 예수가 아니었다.

“언제는 사람들이 책을 샀습니까? 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열심히 책을 읽었냐구요!”

예수는 원망하지 마라, 너희 잘못이 아니다, 말했지만… 그들의 사장은 그렇지 않았다. 안 사면 사게 만들고, 서점 사람들도 한 번 더 만나고, 발로 뛰어야 할 게 아니냐고, 팀장들을 다그쳤다.

다음 날부터 그는 계속 밤 10시까지 야근을 했다. 뾰족한 수는 없지만 무언가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는 것이 회사 내 분위기였다. 그는 밤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독서모임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면서 책을 홍보했다. 각 도서관 사이트 희망도서 신청 게시판에도 조심스럽게 책 이름을 올렸다. 그렇게 온종일 낭인처럼 인터넷 공간을 떠돌다가 퇴근을 하면, 온몸 구석구석에 가시가 박힌 듯 쑤시고 아파왔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에도 그는 4시 40분에 일어나야만 했다. 책이 팔리든 안 팔리든, 어쨌든 고난주간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는 새벽기도회 내내 꾸벅꾸벅 졸기만 했다. 꾸벅꾸벅 졸다가 꿈까지 꾸고 말았다. 저자가 그의 멱살을 움켜잡고 흔드는 꿈이었다. 내가, 은 30냥 값어치도 안 돼! 응? 그런 거야!

고난주간의 마지막 금요일, 그는 새벽기도회에 참석해 조용히 눈을 감았다. 돌아오는 주말까지도 판매량이 오르지 않으면, 이번 책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했다. 그러면… 그러면… 다음 일은 예상할 수 없었다. 그는 새벽기도회에 참석한 이후 처음으로 진지하게, 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아버지, 죄 없이 고난받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죄 없이 안 팔리는 저희 책을 구원해주소서. 미투도, 개헌도, 지방선거도, 정상회담도, 저희 잘못이 아니지 않습니까? 거기다가 프로야구는 왜 또 이렇게 일찍 개막을 하고 난리입니까? 주여, 제발 이 나라 좀 잠잠하게 해주소서. 그래서 사람들이 책 좀 읽게 해주소서. 앞으로 또 월드컵도 열리고, 아시안게임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누가 책을 읽겠나이까? 주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주님의 고난이 끝난 것처럼, 저희 책의 고난도 이제 그만 끝나게 하옵소서. 아멘.”

그가 열심히 기도를 하자, 그의 아내는 옆에서 더 큰 소리로, 감격에 찬 목소리로, 더 열심히 기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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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

1999년 ‘현대문학’ 신인추천 공모에 당선.

소설집 ‘최순덕성령충만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김 박사는 누구인가’. 장편소설 ‘사과는 잘해요’, ‘차남들의 세계사’ 등.

이효석문학상, 김승옥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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