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한 내 안전진단 못 맡긴 재건축 단지 어떡하나

입력 2018-03-07 06:00 수정 2018-03-0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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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까지 구조진단 용역계약 여부에 따라 자산가치 수억원 벌어져

『최영진 대기자의 현안진단』

뭐 이런 되먹지 못한 제도가 있나. 딱 하루 사이에 운명을 갈라놓는 게 무슨 정책이란 말인가.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강화 시점을 놓고 관련 아파트 단지 주민들의 원성이다.

그렇다. 수 억원의 재산권이 달려있는 중대한 사안을 지극히 행정 편의적인 잣대로 가부를 결판내는 방식은 분명 문제가 있다. 우리의 주택시장 구조는 재건축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진다. 그래서 다들 재건축에 목숨을 거는 분위기다. 일단 재건축 허용 연한만 지나면 사업 추진에 열을 올린다. 그런 판에 일정 시한 안에 정부가 내세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재건축을 불허한다면 주민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무슨 소리냐 하면 정부가 지난달 20일 급등하는 서울 아파트 가격 안정을 위해 재건축 구조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하는 정책을 발표하고 이달 5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바뀐 안전진단 기준을 적용할 경우 웬만한 아파트는 재건축이 허용되지 않는다. 지난 4일까지만 해도 완공 후 30년이 지난 곳은 대부분 재건축이 가능했으나 이제는 붕괴 우려가 있는 단지 말고는 허가를 받기 어려워진다.

문제는 구조진단 용역을 의뢰한 날짜를 기준으로 새 기준 적용 여부를 결정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4일까지 용역 계약을 맺은 곳은 종전의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주고 그렇지 못한 단지는 깐깐한 새 기준에 적합해야 한다. 하루 만에 속된 말로 천당과 지옥으로 운명이 엇갈리게 됐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새 기준 적용 단지 주민들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아마 속이 부글부글 끌어 오르다 못해 뒤집어엎고 싶은 마음까지 들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으로 운명의 판가름을 내 온 정책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수 억원의 재산이 걸려있는 예민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그만큼 이번 정책의 후유증이 크다는 얘기다.

정부가 왕창 규제를 풀어 놓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묶어버리겠다고 나오면 누가 좋아하겠느냐 말이다. 그렇게 할 거라면 처음부터 풀지를 말았어야 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수 억원의 돈을 벌 수 있는 혜택을 줘 놓고는 특정 날짜부터 수혜 제도를 없애겠다고 하니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규제를 왕창 풀어 준 당사자는 현 정부가 아닌 전 정부다. 그래서 주택시장이 이 지경이 됐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수많은 부작용이 우려되는 과도한 규제를 담은 경착륙 방안을 선택한 것은 실수인 듯싶다. 차라리 여러 조건을 붙이는 수법으로 인·허가를 까다롭게 하는 식의 연착륙 지혜를 모았다면 주민 반발을 줄이는 것은 물론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도 훨씬 줄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최근 서울 개포 8단지 디에치자이개포 분양가를 소리 소문 없이 깔끔하게 통제한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요령처럼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당초 3.3㎡당 4500만 원 선으로 알려졌던 분양가를 4100만 원대로 확 줄여 고분양가의 우려를 잠재우지 않았는가.

아무튼 재건축 규제 발표가 난 이후부터 이달 4일까지 서울 주요 재건축 예정 단지들은 구조진단 용역 발주에 온 힘을 쏟았다. 아직 구조진단 의뢰 단계도 아닌데도 주민 동의 절차 등을 받으려니 많은 고충이 따랐을 게다. 이런 와중에 기한 내 용역계약을 마친 단지는 황금 열차를 타게 됐고 그렇지 못한 단지는 손에 쥔 행운의 열쇠를 빼앗긴 격이 됐다. 강동구 명일 현대·상일 우성·구로 주공·신길 우성 2차·여의도 광장(28번지) 단지 등은 제때 용역계약을 완료했고 송파 아시아 선수촌·개포 우성 5차·개포 4차 현대·고덕 주공9단지 등 많은 곳은 규제의 벽을 넘지 못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집값을 잔뜩 올려놓은 당사자도 정부이고 주택시장을 급랭시켜 하우스 푸어·깡통주택 등을 양산시키는 장본인도 정부다. 정권을 누가 잡았든 다 정부임은 분명하다.

선거 때마다 표를 의식해 기준을 이리저리 바꾸다 보니 주택시장 구조는 엉망이 돼 버렸다.

이런 식으로는 절대로 시장을 안정시킬 수 없다.

경제보다 정치적 논리가 앞선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부동산 분야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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