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나는 부동산 적폐입니다”

입력 2018-01-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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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싸움만큼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드물다고 했다. 강남 집값이 이쯤 달아올랐으면 상승론자와 하락론자간의 불꽃 튀기는 대결이 으레 등장했을 법한데, 어쩐 일인지 그 다툼 구경이 쉽지 않다.

올해 서울 집값이 폭등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낸 ‘눈치 없는’ 전문가가 있다. 금융회사의 젊은 연구원인 그는 지난해 말 ‘2018년 주택·건설산업 전망’ 이라는 리포트를 통해 서울 주택가격이 두 자릿수의 상승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견이 있을만한 주장이니 내용의 맞고 틀림이나 근거의 합리를 따지는 논쟁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우려스런 대목은 그가 신변을 걱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이 연구원은 “욕을 너무 많이 먹어 (언론에)나설 상황이 못 된다”며 극구 사양했다. 배경을 좀 알아보니 보고서를 낸 후 누리꾼들의 맹공격에 시달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 경로를 통해 많은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안전을 우려해 가족들이 휴가나 휴직을 권했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몸을 사리는 전문가는 이 연구원 한 사람만이 아니다. 요즘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집값이 어찌된 일인지, 그리고 어찌될 것인지를 말하려는 전문가는 귀하다. 사석에서 물으면 조심스레 이유를 말한다.

“나는 부동산 적폐다. 듣기 싫은 소리 하면 그날로 적폐가 되니까. 괜히 나섰다가 밥줄 끊긴다.”

그렇다면 ‘듣고 싶은 소리’를 하는 전문가의 경우는 어떨까

이명박 정부시절 강남 아파트 폭락론을 주장해 꽤 이름을 얻은 부동산 전문가를 인터뷰 한 기억이 있다. 당시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에다 강남 지역 아파트 공급이 제법 이뤄지고 있었던 터라 집값이 약보합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늦기 전에 강남 아파트를 팔고 전세로 피신해야 한다”는 지론을 설파했다. 그런데 그는 사실 강남 아파트 소유자였고, 온다던 강남 폭락은 10여년이 흐르도록 소식이 없다.

비록 빗나간 예측이지만 폭락론으로 이름을 얻은 그는 올해 지방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두려움에 떨며 숨어버린 젊은 연구원에게 눈치가 없다고 핀잔을 준 이유는 이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절 시쳇말로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된 언론사 입사동기가 있다. 부동산 폭등으로 민심 이반이 심각했던 2005년 어느 날, 그가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옳다고 주장해줄 전문가를 십여명 소개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난감했지만 그렇다고 나라사랑인 동기사랑을 어찌 외면하랴. 여기저기 연락을 돌려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코웃음과 이상한 사람 취급이 대다수였다.

그때 그 시절을 다시 돌아보는 이유는 당시의 전문가들은 정부를 향한 꾸짖음을 망설이지 않았고, 각자의 소신에 따라 상승론과 조정론으로 맞서며 백가쟁명 했다는 점 때문이다. 듣기 싫은 잔소리가 잦아들다 못해 스스로 숨어버린 지금의 부동산 시장이 걱정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문가’는 이름에 걸맞게 자신이 내놓는 전망의 맞고 틀림을 가벼이 여겨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사실 결과에 따라 명성 혹은 오명을 얻는 것은 그들의 몫이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마음껏 떠들고 논쟁하도록 오히려 권하고, 정부나 수요자는 그들의 말 가운데 옥석을 가려들으면 되는 일이다.

요즘 대학가에는 대나무 숲이라는 것이 있다. 익명으로 속내를 털어놓는 게시판 같은 곳인데, 부동산 전문가들에게 이런 거라도 하나 만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합(合)은 정(正)과 반(反)이 충돌한 뒤에야 나온다. 다른 생각은 적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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