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의 햇살과 바람] 그리움이라는 말

입력 2017-09-0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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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똑같이 사흘을 굶었다. 나흘째 A와 B 앞에 열 개씩 든 사과 상자를 놓았다. 마음대로 먹으라 했다. A는 너무나 허기져 사과를 보자마자 먹기 시작했다. 세 개 다섯 개 일곱 개 그렇게 먹고 나니 속도가 느려졌고 열 개를 다 먹고 나니 사과는 꼴도 보기 싫어졌다. 구역질이 나려고도 했다.

B는 반대로 서서히 사과를 하나 들었다. 바라보았다. 사과의 빛깔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을 처음 알았다. 손으로 닦아 붉은 쪽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식도로 사과의 향이 배어들었다. 허기진 뱃속까지 그 향은 느리게 전달되며 달콤했다. 두 번째도 그렇게 느리게 생각하며 느끼며 한 입 베어 물었다. 온몸이 사과향으로 물드는 것 같았다. 이 세상에는 사과향 이외에는 존재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겨우 한 개를, 그렇게 겨우 두 개를 먹고 나니 왠지 사과 먹는 일이 두려워졌다. 그리고 그는 생각한다. 사과는 일생 자신에게 그리운 존재가 될 것이라는 걸 생각한다. 사과라는 존재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래서 그쯤에서 사과 먹는 일을 정지(停止)시켰다.

두 사람은 먹는 방법이 달랐다. 하나는 지겨운 결과를, 하나는 그리운 결과를 가져왔다. 이 이야기는 대학시절 서정주 선생님이 문학특강 때 하신 말이다. 그리움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온몸에서 우러나야 하며 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시를 쓰지 못한다고 강조하신 분은 박목월 선생님이다.

대학시절 그분들의 말씀을 뒤로 흘렸다. 그리움은 넘치는 나이였고 느린 박자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움을 견디는 것은 비겁이라고 우기던 시절, 너무 그리워 심장에 피 흘리는 일은 젊음이 아니라고 우기던 시절, 지겹더라도 저 하늘의 구름까지 마음으로 끌어안아야 성이 차던 화끈한 시절 진정한 그리움이야말로 생명과 같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 무엇을 그리워했다. 생명은 그리움으로 연명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특히 문학에서야 더 무엇을 말하겠는가. 내게 지금 그리운 게 무엇인가. 세 번째 커피를 마시며 생각하는 오후다. 기다리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러니 마음이 잦아지면서 참고요를 느낀다. 모든 생각과 사물이 지겨워진다면 사람은 아무것도 소중한 것이 없게 된다는 것을 오늘 생각해 본다. 너무 아파서 목숨도 함께 그리움을 반납하고 싶었던 젊은 시절처럼 조금 아프더라도 그리움이 있으면 좋으련만 내 생각은 평범하거나 보통의 인간적 갈망에 그치고 있다.

그리움이란 새로운 것을 탄생시킬 수 있는 가장 큰 에너지다. 그 그리움이 절박하다면 삶의 화력(火力) 온도를 더 집중적으로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문학의 역사는 결국 어떻게 사랑하느냐 하는 질문이고 어떤 ‘삶’을 말하는 것이다. 가장 큰 사랑의 압권은 논어의 ‘애지 욕기생(愛之 慾其生)’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평범하지만 깊은 뜻이다.

문학도 바로 상대를 살게 하는 것이다. 작품도 살리고 독자도 살리면 작가도 살게 된다. 찢어진 고무신을 신고 있어도 그 정신은 푸른 칼날의 예민함을 지녀야 한다면 나는 사과향을 죽이고 배부른 쪽을 선택하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바란다. 없다는 것은 그 존재를 우주로 확대하는 것 아닌가. 이 세상 어느 것도 지겨울 만큼 소유하고 싶은 것은 없는지도 모른다. 그리움을 갖기 위해 지금 바로 앞에 없다는 것, 그것도 행운(幸運)이라면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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