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세상풍경] 대마초와 삼굿

입력 2017-06-3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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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가끔 남몰래 대마초를 피우다 발각돼 신문이고 텔레비전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연예인이 있다. 그런 신문 기사나 방송 뉴스를 접할 때면 집집마다 삼밭을 가꾸던 어린 시절의 일이 생각난다. 삼밭이라니까, 모르는 사람은 혹 인삼밭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인삼밭이 아니라 삼베를 얻는 삼밭 이야기이다.

우리 집도 대관령 아래 꽤 넓은 삼밭이 있었다. 그땐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라 동네 거의 모든 집이 삼을 심었다. 요즘 말로 하면 그게 바로 대마초이고 마리화나이다. 대마초의 원료가 되는 잎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의 줄기에서 나는 껍질을 얻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억세고 지독한 모기를 얘기할 때 바닷가 모기를 첫손에 꼽는다. 바닷가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면 모기가 두꺼운 군용 모포도 뚫고 피를 빨아 먹는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억센 모기가 바로 삼밭의 모기다. 지금은 삼을 심지 않으니 그런 표현을 쓰지 않지만, 성질이 모지락스럽고 질긴 사람을 ‘삼밭의 모기’ 같다고 한다. 대마의 진을 빨아 먹은 모기이니 바닷가 모기에 댈 것이 아니다. 누런 삼베 올에 드문드문 박혀 있는 검은 점이 바로 모기가 진을 빨아 먹은 자리이다.

봄에 삼씨를 뿌리면 어른의 키보다 훨씬 크게 자란다. 가을이 되면 할아버지가 삼밭에서 삼을 잘라 온다. 밭에서 이미 우듬지와 잎을 쳐내고 줄기만 잘라서 가져온다. 그 줄기를 가마솥에 삶아 껍질을 벗겨낸다. 이 껍질을 이로 잘게 찢어 한 가닥 한 가닥 실처럼 이어 붙인다. 나중에 이걸로 베를 짜는 것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일이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삼 껍질로 겨우내 노끈을 만든다. 나일론 줄이 나오기 전에는 자리도 이 노끈으로 매고, 모심기를 할 때 쓰는 못줄도 이 노끈으로 만들었다.

좀 더 큰 마을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삼을 쪄낸다. 그것을 삼굿이라고 부르는데, 우선 마을 한가운데 공터나 밭에 아주 커다란 웅덩이를 판다. 웅덩이 제일 아래에 장작을 가지런히 쌓고, 장작 위에 여러 층으로 자갈을 붓는다. 그 위에 삼밭에서 베어 온 삼대를 커다란 단으로 묶어 세우고 흙을 덮는다.

그런 다음 제일 밑에 깔려 있는 장작에 불을 붙여 자갈이 뜨겁게 달구어지면, 그때 미리 내 둔 구멍으로 물을 붓는다. 바짝 단 자갈에 닿은 물은 금세 증기로 변하면서 그 위에 세워 둔 삼대를 삶고 쪄내듯 익히는 것이다. 이때 감자와 옥수수 같은 것도 함께 집어 넣어 익힌다. 감자와 옥수수와 삼이 완전히 익으면 흙을 헤치고 삼대를 꺼낸다.

이 공정을 삼굿이라고 불렀다. 삼을 찌는 일인데 삼찜이 아니라 삼굿이라고 불렀던 것은 삼을 찔 때 부정 타지 말라고 고사도 함께 지내기 때문이다. 삼대는 껍질을 벗기면 아주 하얀 모습으로 남는데 이걸 겨릅대라고 불렀다. 이걸로 울타리도 치고, 지붕에도 올리고, 발처럼 엮어서 가림막으로도 사용했다. 예전에는 농경 생산의 중요한 과정으로 삼굿을 했고, 지금은 사라져가는 옛일을 되살리는 축제처럼 삼굿을 하고 있다.

동네마다 삼밭이 흔했는데도 마을 사람 누구도 그걸 담배 대신, 혹은 담배처럼 피우지 않았다. 그 잎을 ‘대마초’라고 부르는 사람도, 그걸 담배처럼 피울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귀한 의복을 만드는 원료로만 여겼다. 사람들이 어리숙했던 시절이 아니라 모두 선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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