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더 킹’의 안희연은 ‘여검사’ 아닌 검사

입력 2017-02-23 10:57 수정 2017-02-23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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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교열팀 차장

“검찰 역사상 이 정도 쓰레기들이 있었습니까? 쪽팔려서 검사 하겠습니까? 착한 사람들 옷 벗기기 전에 이 사람들 옷 벗기시죠.”

촌철살인의 이 대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영화 ‘더 킹’ 속 감찰부 소속 안희연 검사가 부패한 정치 검사들을 겨냥해 한 말이다. 표준어가 아닌 정감 있는 경상도 억양에, 뼈를 담아 한 말이라 더욱 통쾌했다. 안희연 검사는 몰염치와 부도덕으로 점철된 비리 권력에 맞선 ‘더 킹’의 유일한 정의였다.

영화가 끝난 후 극장을 빠져나오는데, 여기저기에서 “여검사, 정말 멋있다”는 평이 쏟아졌다. “그 여배우 이름은 김소진이야”라는 소리도 들렸다. 안희연 검사가, 그리고 그 역을 맡은 김소진 배우가 관객들에게 굉장한 존재감을 발휘한 것이다. 그런데 ‘여검사’, ‘여배우’라는 말이 영 거슬린다. 그 누구도 남검사, 남배우를 말하지는 않았다. 굳이 성별을 강조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여검사, 여배우, 여교수, 여의사, 여기자…. 직업에 성을 구분하는 ‘여(女)-’를 붙이는 것은 성차별의 대표적인 언어 사례다. 전문적인 일에 능숙한 여자를 가리키는 말 ‘여류(女流)’도 마찬가지이다. 일의 능력보다는 여성인 점을 드러내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또 이 말은 직업이나 능력을 말할 때 남성이 기준이 된다는 느낌을 준다. 남검사, 남배우, 남교수, 남의사, 남기자 등의 말은 보고 듣기조차 힘들다. ‘남류(男流)’도 없다. 공무원, 의료계, 교육계 등 전 분야에 걸쳐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한 시대이니 만큼 불필요한 성별 표시는 사라져야 한다.

내친김에 여성 차별적 언어들을 짚어 보자. 우선 현대사회와 어울리지 않는 말 ‘미망인(未亡人)’. 미망인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남편과 함께 죽어야 할 것을, 아직 죽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 잔인하고 가슴 아픈 호칭이 또 있을까? 미망인 대신 ‘고(故) ○○○ 씨의 부인’이라 말하고 써야 한다.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는데 굳이 어려운 한자어를 쓸 이유도 없다.

‘처녀작’ ‘처녀항해’ ‘처녀비행’처럼 첫 행위를 표현할 때 ‘처녀의 순결성’에 비유하는데, 이 또한 엄연한 성차별 언어다. 여성에게 강요되는 순결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총각○○’은(는) 없지 않은가! 첫 작품, 최초 항해, 처음 비행 등 중성적이고 객관적인 말로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

학생의 보호자를 ‘학부형’이라고 칭하는 것 역시 명백한 오류이다. 학부형(學父兄)은 말 그대로 학생의 아버지나 형을 뜻한다. 보호자는 남자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담긴 말이다. 물론 형이 보호자인 경우도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 보호자는 아버지와 어머니일 터, ‘학부모’가 바른 용어이다.

서울 목동고, 인천 신현고, 부산 국제외국어고, 전북 완주군 한별고, 충남 아산 온양한올고…. 교명에서 ‘여자’를 뺀 여학교들이다. 성평등의 관점에서 남녀 구분을 없앤 좋은 사례다. 이규영 목동고 교감의 말이 울림이 되어 이런 학교가 더욱 늘어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학교 비전이 ‘글로벌 리더 양성’인데 교명에 성별을 표시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했죠. 양천여고가 목동고로 바뀐 가장 큰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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