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목탄 자국은 스크레치에서 예술이 된다

입력 2017-02-2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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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하다 보면 성과는 안 나고 자꾸 수렁으로 빠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힘을 내봐도 악순환의 연속이라 계속 힘을 내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유야 어찌 됐든 다시 처음으로 되돌리고 싶은 마음만이 간절하다. 처음으로 되돌려 무엇을 만회하겠다는 계획은 없어도, 도돌이표 같은 재탕 사업일망정 그냥 백지 위에 다시 칠하면 정말이지 큰 성공을 거둘 것만 같다. 이렇게 패자의 마침표를 찍고 나면 영영 다시는 되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습작의 원고지처럼 박박 구겨 쓰레기통에 처박고는 다시금 새 종이와 맞대하고 싶을 때가 있다.

어느 언어학자가 쉼표(,)와 마침표(.)를 구분해 놓았는지는 몰라도 ‘마침표’는 텍스트 위에서건 인생의 여정에서건 그 이름부터 맘에 들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도 못한 채 고작 프롤로그만 썼을 뿐인데도 마침표는 자기 할 것 다했다며 태업(怠業)이라도 할 모양새다. 얼른 새로운 텍스트로 이동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겠고, 지긋지긋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일 수도 있겠다. 수렁에 빠진 사업에 마침표 하나 없이 다음을 서둘러 기약하고 싶은 마음은 그다음이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 백지(白紙)일 것이라는 착각의 작용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느끼고 싶은 것만 느끼며 자기 합리화에 익숙해지는 모양새가 그리 인간적으로만 보이지 않는 까닭은, 너무나 많은 이들이 현실도피를 돌이킬 수 없는 과거 때문이라고 치부하기 때문이다.

2월은 졸업 시즌이다. 그리고 3월은 입학 시즌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졸업을 축하하면서 이내 곧 새로운 입학을 축하한다. 반대되는 의미의 사건에 짧은 시차를 두고 같은 마음으로 축하한다는 것이 자칫 마음에 없는 형식적인 행위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고된 하나가 끝났음을, 그리고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 좋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졸업식에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하고, 입학식에서는 시작이 좋아야 끝이 빛날 수 있다고 말한다. 매번 ‘빛나는 끝’을 가지고 새로운 시작을 맞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어디 세상 사는 게 내 마음 같은가. 수많은 아쉬움을 가진 채 새로운 시작이 또다시 도래할 뿐이다. 아쉬움이라는 스크래치가 있어야만 새로운 오늘이 조금은 더 나아진다고 생각한다. 타이어가 물길 위에서도 미끄럼 없이 굴러갈 수 있는 이유가 수많은 스크래치를 형상화한 무늬의 연속임으로 안다면, 인생의 아픔 또한 돈 주고 사는 것이 그리 어리석은 일은 아닐 것이다.

아픈 과정을 겪지 않고서는 번듯한 미래를 영위할 수 없다. 아픈 과거라 하더라도 짊어지고 가야 비로소 성공하는 것이 사업이라면 행복한 삶을 위해 아픔을 동반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남과 함께한다는 것보다 오히려 더 위험하다. 남과 함께한다는 것은 내가 그들 속에 있음을 의미한다. 애초에 누구도 가보지 않은 곳은 없다. 아니, 우리에게 그와 같은 초인의 능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애매한 끝, 스크래치 난자한 현실에 있어서도 자신만 홀로 놓인 것은 아닐 것이다.

아프고 외로운 상황이 모두에게 숙명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한없이 깨끗한 캔버스에 자신을 올려놓을 수는 없다. 애초에 캔버스는 보일 듯 말 듯 무수한 스크래치로 이루어져 있을뿐더러 한 장도 아닌 묶음으로 놓여 있지 않은가. 스크래치에 지나간 목탄 자국을 예술이라 말함에 위로받으며 우리의 인생도 그림을 완성해가는 모양새에 만족할 수 있어야 내일이 행복할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자신을 위한 인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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