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노마드 골퍼”…상금 좇아 세계를 누빈다

입력 2016-11-2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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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 상금 많은 일본행…안병훈, PGA투어...왕정훈, 유럽투어 맹활약

“이제 21세기형 ‘노마드’라 불러다오.”

진짜 유목인(遊牧民)이 아니다. 남자 프로골퍼 얘기다. 노마드는 유목민의 라틴어. 이전의 유목민은 중앙아시아, 몽골, 사하라 등 건조, 사막 지대에서 목축을 생업으로 삼아 물과 풀을 따라 옮겨 다니며 사는 사람을 가리켰다. 그러나 현대판은 다르다. 신세대 노마드는 휴대전화, 노트북, 드론 등과 같은 첨단 디지털 장비를 갖고 자유롭게 유랑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한국의 젊은 프로골퍼들은 첨단기기와 함께 골프백을 짊어지고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 왜, 유랑생활에 뛰어드는 걸까. 불확실한 미래 때문이다. 국내골프는 조금 기형적이다. 여자대회는 33개 215억 원. 그러나 남자는 겨우 12개, 80억 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소속 프로는 6000명이 넘는다. 여자는 2000여 명. 정규 투어에 출전해 상금을 타는 선수는 많아야 200여 명 안쪽이다. 매주 대회가 열리는 여자들도 출전 제한으로 120~140명 정도. 그것도 컷오프를 통과해야 상금을 받는다. 절반은 늘 컷오프를 당한다.

떠나는 선수는 2가지 유형이다. 기량이 탁월해 국내를 평정하고 미국이나 일본무대로 옮겨가는 경우다. 대표적인 선수가 최경주(46·SK텔레콤)와 김경태(30·신한금융그룹)다. 최경주는 국내에서 굵직한 대회에서 승수를 올리더니 눈을 미국으로 돌려 성공한 케이스다. 국가대표 출신의 김경태도 마찬가지. 국내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고 생각해 일본행을 택했다. 지난해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5승을 챙기며 상금왕에 오른 김경태는 올 시즌에 벌써 3승을 거뒀다. 송영한(25·신한금융그룹)과 조병민(27·선우팜)도 각각 1승씩을 따내며 든든히 뒤를 받쳤다. 매주 경기가 열리는 일본프로골프투어(JGTO)가 ‘황금알을 낳은 거위’였기 때문이다. 한국선수들은 일본처럼 좋은 무대가 없다. 한국선수들이 해마다 퀄리파잉(Q)스쿨에 200여 명씩 도전한다. 일단 Q스쿨만 통과하면 일본무대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절대로 일본선수들에게 밀리지 않는 기량을 지니고 있는데다 정신력도 강해 언제든지 우승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일본 나고야 미에현의 코코파리조트 골프코스에서 열린 Q스쿨에서 지난 3년간 한국선수와 재미교포가 수석을 차지한 것만 봐도 한국선수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이상희(24)도 수석 합격자다. 김형성(36·현대자동차), 이경훈(25·CJ대한통운) 등 수십 명의 프로들이 매주 일본선수들과 샷 대결을 펼치고 있다.

일본과 미국을 택한 선수는 그나만 형편이 나은 선수들이다. 유목민 이상으로 ‘유랑’ 생활을 마다않는 선수가 있다. 안병훈(25·CJ오쇼핑)과 왕정훈(21·캘러웨이)이다. 여기에 이수민(23·CJ오쇼핑)이 가세했다. 유럽투어로 가기 위해 안병훈과 왕정훈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험난한 길을 걸었다. 뼈를 깎는 고된 생활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마치 고행에 나선 ‘수도승’ 같은 선수들이다. 이들은 ‘눈물 젖은 빵’을 제대로 먹은 신세대 프로골퍼로 보면 된다.

이 때문에 둘은 골프 궤적이 비슷하다. 주니어 시절에는 특별한 재능을 발휘했다. 그러나 프로 데뷔 후 가시밭길이었다. 그리고 둘 다 지기 싫어하는 근성을 갖고 있다. 둘 다 국내서 상비군이나 대표를 지내지 못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았다. 강점은 둘 다 키가 183cm가 넘고, 320야드 이상 시원하게 장타를 날린다는 점이다. 그리고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둘다 리우 올림픽에 출전했다.

안병훈은 탁구스타 국제커플인 안재형과 자오즈민의 아들이다. 그는 세종초교 때 방과 후 스포츠 활동으로 골프에 입문했다. 중학교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날아갔다. 그는 17세 때인 2009년, 최연소로 US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2011년 프로에 진출했으나 처음부터 난항이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Q스쿨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차선책을 택한 것이 유럽이었다. 유럽 투어도 장벽이 높다.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2부 챌린지 투어를 뛰었다. 3년 동안 챌린지 투어에서 기량을 차근차근 다져나갔다. 그는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오만, 케냐 등 불모지를 돌아다녔다. 아프리카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것이 내공이 될 줄이야. 지난해 유럽투어 정규 투어에 입성해 남아공, 두바이, 카타르, 모로코, 중국, 스페인, 영국 등 7개국을 순회하며 경기를 치렀다. 그러다가 덜컥 우승한 것이 유럽 메이저대회 BMW PGA 챔피언십이다. 이 한 방으로 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고 유럽투어 신인상을 수상한 뒤 PGA투어로 옮겼다.

안병훈이 떠돌이 이방인이었다면 왕정훈은 한국과 필리핀, 그리고 중국을 오간 뒤 유럽에 합류한 케이스다. 왕정훈은 초등학교 6년 때 필리핀으로 날아갔다가 중학교 3년 때 한국에 돌아왔으나 학제가 맞지 않아 다시 필리핀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필리핀에서 아마추어챔피언십에서 우승, 국가대표를 꺾을 정도로 기량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다시 쫓겨나야 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이때 중국에서 3부투어가 생겼다. 나이 제한이 없었다. 그의 나이 만 16세. 2012년 프로로 전향했다. 실력에 걸맞게 상금왕이 됐다. 그러면서 아시안투어로 눈을 돌렸고, 다시 유럽투어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아시아인 최초로 유럽투어에서 2주 연속 우승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그것도 최연소 기록이다. 안병훈에 이어 올해 유럽투어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수민은 국내에서 탄탄하게 기량을 쌓은 뒤 안병훈, 왕정훈과 함께 올 시즌 유럽투어에서 활약하는데 벌써 1승을 챙겼다. 이들은 유럽투어가 미국프로골프(PGA)투어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임을 잘 안다.

국내 남자 프로계가 활성화되지 않는 한 보다 많은 ‘노마드’ 선수들이 등장할 것은 불 보듯 훤하다. 안성찬 골프대기자 golfahn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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