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다.”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인간은 생과 사에 걸쳐 수많은 선택상황을 마주하고 무언가 선택함으로써 (혹은 선택하지 않기를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꾸려나간다. 인생이 수많은 선택의 연속인 만큼 선택마다 영향을 미치는 기간이나 정도가 다양한데, 점심메
☆ 장 폴 사르트르 명언
“인간은 자신의 선택 때문에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간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소설가, 극작가. 유명한 페미니스트인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계약결혼으로도 유명하며 보부아르와는 부부 관계 이외에도 학문적 동반자로서 서로의 원고를 검토해주는 평생 관계를 유지했다. 실존주의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그는 자신의 철학을 실존주의로 명명한 최
“인생의 새로운 기쁨을 찾았어요. 이제부터 내 소망은 자동차가 아니라 내 자전거를 한 대 갖는 것뿐이에요.”
프랑스 여성해방운동가이자 실존주의 철학자이며 소설가인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년)가 계약결혼한 장 폴 사르트르에게 보낸 편지 속 문장이다. 서른두 살에 처음 배운 자전거의 매력에 홀딱 빠진 그녀는 소설 ‘타인의 피’에서도 자전거를
☆ 장 폴 사르트르 명언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수많은 C(Choice)이다.”
소설가, 극작가로도 활동한 프랑스의 대표적 실존주의 철학자.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사회 참여적인 성향이 강한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부르주아의 상이라고 수상을 거부했다. 연인인 시몬 드 보부아르와도 부르주아적 결혼에 대한 저항으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5월에는 각종 날이 몰려 있다. 자연히 진정한 어른의 의미를 반추케 된다. 나보다 젊은이에겐 어른의 자격에 자성하게 되고, 어르신에겐 선행학습하게도 된다. 프랑스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이라는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아래로 떨어질수록 인생은 더 선명하게 보인다”며 나이 듦을 찬양했다.
늙을 로(老)는 긴 머리칼
대명천지(大明天地)에 이게 뭔 소리인가 하겠지만, 일회성이 아닌 반복적 행위에는 어떤 패턴이 있게 마련이다. 상점 주인이 같은 상품의 무게를 측정하면 매번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측정에서의 우연한 실수를 모아서 그래프를 그리면 정규 분포가 된다. 종 모양처럼 생긴 그림 말이다. 더 많이 측정해보면 실수조차도 어떤 규칙성이 있다는 걸 부인할 도리가 없다.
서울여자대학교는 26일 오전 서울 노원구 캠퍼스 학생누리관 소극장에서 손미나 전 KBS 아나운서(현 손미나앤컴퍼니 대표)를 초청해 ‘국제매너를 갖춘 대학 지성인’ 특강을 열었다고 27일 밝혔다 .
이날 손미나 대표는 KBS에서 간판 아나운서로 활약하다 스페인 유학을 통해 여행작가로 변신하게 된 일화를 들려주며 자기주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노하우를
사막에 목마른 두 사람이 있다. 물을 가져온 사람은 싹싹하고 착한 A와 치사하고 악랄한 B 중 누구에게 물을 줄 것인가? 물을 가져온 사람은 B의 엄마다. 그녀는 A와 B라는 인간의 본질에 관계없이 존재로 판단해 자식인 B에게 물을 준다. “인간은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는 장 폴 사르트르(1905.6.21~1980.4.15)의 명제를 실존철학 강의에서 설명
다가오는 봄, 시원스런 사진전을 통해 문화수준을 높이고 잊지 못할 추억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관람객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가볼만한 사진 전시회가 봄을 재촉하듯 손님을 맞을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먼저 오는 20일까지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와 신사동 캐논플렉스에서 동시에 전시되는 ‘무한도전 사진전’이 단연 눈에 띈다. 지난 2009년에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새해 아침, 한 중견 시인의 시집 제목에 마음이 출렁였다. “무슨 끝이 있나요”라는 물음이 메아리치듯 들려왔다. 일찍이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인간의 성찰 없는 사랑을 비판하며 “오늘날의 사랑 담론은 지극히 외로운 처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이해관계’만 작동하는, 흔해빠진 결판의 스토리만 분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어린 친구들이 쓰는 말로 표현하면 ‘성공한 덕후(마니아)’ 같다고. 다른 분야가 아닌 ‘불교 덕후’. 그러자 웃으며 그가 화답했다. “맞아요. 덕후는 나쁜 표현이 아니에요. 결국 한 분야에 능통하고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미래를 주도하며 세상을 바꿀 거예요.” 이렇게 스스로를 덕후라 말하고 있는
지난 여름 파리 피카소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다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가 1951년에 그렸다는 과 다시 만났다. 순간 20세기 거장의 작품을 보며 왠지 씁쓸한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필자의 국적 때문은 아니었다. 이념의 덫에 걸린 예술 문화 작품을 다시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수년 전 원로 서양화가 김병기(金秉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