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주의 과학에세이] 실수조차 맘대로 못 한다고?

입력 2017-12-2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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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천지(大明天地)에 이게 뭔 소리인가 하겠지만, 일회성이 아닌 반복적 행위에는 어떤 패턴이 있게 마련이다. 상점 주인이 같은 상품의 무게를 측정하면 매번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측정에서의 우연한 실수를 모아서 그래프를 그리면 정규 분포가 된다. 종 모양처럼 생긴 그림 말이다. 더 많이 측정해보면 실수조차도 어떤 규칙성이 있다는 걸 부인할 도리가 없다. 우연한 행위조차도 많이 모이면 일정한 패턴을 만들고, 그래서 “인간은 실수조차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표현에는 어떤 통찰이 들어 있다.

비둘기 10마리가 9개의 비둘기 집에 들어가려면 필연적으로 어느 비둘기 집에는 두 마리 이상이 들어가야 한다. 수학에서 흔히 비둘기 집 원리라고 부르는 사실인데, 너무 당연해서 이런 게 무슨 원리냐고 반문할 만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16마리의 비둘기가 35개의 비둘기 집에 무작위로 들어간다고 생각해보자. 물론 사이좋게 안 싸우고 서로 다른 집에 들어가도 된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실험을 해보면, 어느 비둘기 집에 두 마리 이상이 들어가서 다툴 확률이 98.32%다. 이쯤 되면 우연히 만들어내는 필연이라 할 만하다.

개인이 아닌 집단의 움직임에도 예측 가능한 요소가 있다. 할리우드의 배우들을 점으로 표현하고 같은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는 배우들을 선으로 이어보면 복잡한 인적 네트워크 그림이 생기는데, 특이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연결된 ‘마당발’ 배우가 몇 명 나타난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혼인 네트워크를 그려봐도 마당발 가문이 나타난다. 제멋대로 만들어진 인터넷 연결망을 그려봐도 연결도가 집중된 점들이 나타난다. 해커가 이런 몇 개의 점들을 공격하면 전체 인터넷의 연결성이 급속도로 약화돼서 전체 인터넷 접속이 아주 느려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다.

이렇게 전체 시스템은 구성 요소와 무관하게 마치 독자적 생명체인 것처럼 어떤 질서를 가지고 움직이고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된다. ‘복잡계’ 연구자들은 이런 관점으로 생명현상이나 물리현상, 사회현상에 접근한다.

서양사람 눈에는 비슷해 보이는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을 우리는 종종 정확하게 가려낸다. 통계적으로는 40% 가까운 정확도로 가려낸다고 한다. 얼굴 윤곽 등의 인종적 요소뿐 아니라 옷차림새나 화장법 등의 문화적 요소까지 고려하면 정확도는 더 올라갈 것이다.

질서가 있으면 관찰과 학습이 가능하고, 이런 건 인공지능이 아주 잘한다. 4만 명의 한국, 중국, 일본 사람들의 사진을 학습한 미국 로체스터 대학의 인공지능은 75%의 정확도로 국적을 가려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인간보다 두 배 가까운 정확도다. 특이하게도 생체적 특징뿐 아니라 헤어스타일이나 표정 등에 나타나는 국가별 차별성도 끄집어냈다고 하니, 문화적인 차이까지 고려해야 정확도가 올라갈 거라는 추측은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관찰과 학습은 더 이상 인간의 고유 영역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의료 영상의 판독 정확도에서 인간을 넘어선 것은 이미 한참 전이다. 그럼 인간을 구별 짓는 요소는 뭘까.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상상력이라고 주장했다. 상상은, 관찰에 의해 사물의 특정 영역을 ‘인지’하는 것과는 달라서, 대상의 ‘총체성’을 보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차별성을 주장한 사르트르는 인공지능의 출현을 상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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