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회’ 앞세워 군사 반란…12·12 그날의 진실
‘12·12 군사 반란’은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의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사건이다. 본래 ‘12·12 사태’라고 불렸지만 김영삼 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 사업을 통해 쿠데타였던 것이 드러났고, 이후 공식적으로 ‘12·12 군사 반란’으로 불리고 있다.
이들이 이끌던 신군부세력은 군부 내 사조직...
노태우 정부 때 신설된 문화부 초대 장관(1990~1991)이었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가 문화 연구자로서 내놓은 저서 중에는 1982년 일본어로 발간된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한국어는 물론 영어와 불어로도 번역된 이 책은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이 전 장관은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차례 큰 수술을...
살아있는 동안 잘못을 빌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도 국가장을 치른 것에 대해 논란 속에 장지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 전 대통령, 파주 검단에 임시 안치
지난달 30일 국가장을 마친 후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현재 24일여 동안 파주시 검단사에 임시 안치돼 있다. 영구 안치될 장지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전 노 전 대통령 측은 파주시 탄현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30일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엄수됐다.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이날 오전 11시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광장에서 열렸다. 영결식은 검소한 장례를 희망한 고인의 뜻과 코로나19 방역 지침 등으로 인해 50인 이하의 인원이 참석했다. 정부에서는 김 총리와 장례집행위원장인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참석했으며...
노태우 전 대통령의 노제(路祭)는 고인의 유언대로 연희동 자택에서 조촐하게 치러졌다.
30일 오전 9시 정각 고인을 실은 8인승 링컨 리무진이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출발했다. 운구차는 약 8.8㎞를 달려 연희동 자택까지 도착했다.
노 전 대통령의 맏손주인 노재헌 변호사의 아들 장호씨가 영정 사진을 들고 운구차에서 내렸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노...
그러면서 “재임 시에 보여주신 많은 공적보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고인이 유언을 통해 국민들께 과거의 잘못에 대한 사죄와 용서의 뜻을 밝힌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노태우 대통령님이 우리 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큰 과오를 저지른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며 “우리는 또한 역사 앞에서 진실을 밝히고, 피해자들에게 이해와 용서를 구할 때...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27일 정ㆍ재계 인사들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빈소는 2개층에 걸쳐 정ㆍ재계 인사들이 보낸 조화들로 가득 찼다.
◇제일 먼저 찾은 6공화국 인사들
이날 조문은 오전 10시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일찍부터 노 전 대통령과 함께 1980년대 한국 정계를 주름잡았던 주역들이 일제히...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유언이 27일 유족인 아들 노재헌 변호사를 통해 공개됐다.
노 변호사는 이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취재진과 만나 고인의 생전 유지를 전하며 "국가에 대해 생각과 책임이 컸기 때문에 잘했던 일, 못했던 일 다 본인의 무한 책임이라 생각하고 계셨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5·18 희생자에 대한 가슴 아픈 부분, 그...
요미우리 “서울 올림픽 개최로 국제 지위 향상”아사히 “전두환 측근으로 군사독재 정권 지지”산케이 “문 정권, 국가장으로 화해 도모하지만, 논쟁 예상”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에 일본 언론도 주목했다. ‘올림픽을 성공시킨 대통령’부터 시작해 ‘민주화를 선언한 군 출신 대통령’, ‘전두환의 측근’ 등 다양한 평을 내놨다.
27일 요미우리신문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유족이 26일 성명을 내고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는 내용의 유언을 공개했다. 다음은 노 전 대통령 유족이 발표한 성명 전문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 유족 성명 전문오랫동안 병환에 계시던 사랑하는 저희 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께서 10월 26일 오후 운명하셨습니다.많은 분들의 애도와 조의에 감사드리며 아버지께서...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징역 17년을 선고
축구 응원단 ‘붉은 악마’ 탄생. PC통신 하이텔의 10여개 축구 동호회 운영자들이 서울 대학로 칸타나 카페에서 비인기 스포츠로 전락한 축구의 응원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칸타타 선언 채택했다. 선언 참가자들은 30∼40대 직장인과 교사 등이 주축이었다.
붉은 악마란 명칭은 1년 반 뒤에 지어졌다. 처음 이름은 ‘그레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