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 감정노동자 상처 치유 나선다

입력 2014-07-0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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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감정관리 프로그램 운영·이마트, 컴플레인 고객 매뉴얼 배포

# 전화가 왔다. 고객이 주문한 상품이 다른 곳으로 배송됐다고 한다. 확인해 보니 해당 상품은 고객이 요청한 주소대로 배송돼 있었고, 고객에게 문자로 배송 사실을 안내한 후 회신까지 받은 상태였다. 상습적으로 배송 주소를 잘못 적어 꼬투리를 잡는 ‘블랙컨슈머’ 고객이었다. 우리 백화점에 공식 집계된 횟수만 70차례, 컴플레인을 걸고 직원들에게 개인적인 심부름을 강요했다고 한다.

고객은 한밤중에 전화를 다시 걸어왔다. 폭언과 함께 당장 물건을 가져오고 상품권으로 피해를 보상하라고 요구했다. 퇴근 후였지만 주문 상품을 들고 고객 집을 찾았다. 고객은 욕설을 하며 뺨을 세 차례 때렸다. 눈물이 났지만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서울 한 백화점에서 발생한 실제 사례다. 이처럼 고객의 부당한 요구에도 자신의 감정과 무관하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서비스 노동자들에 대해, 앨리 러셀 혹실드 UC버클리 사회학과 명예교수가 제시한 개념은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다. 최근 유통업계에서는 고객과 대면하며 ‘감정노동’을 강요받는 노동자들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1일 홈플러스에 따르면 5월부터 점포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직원과 고객의 행복을 위한 감정관리’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이에 따라 홈플러스 직원들은 점포별 감정관리 강사 139명, 따뜻한 서비스 리더 8명에게 업무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화’를 다스리면서 회복 탄력성을 키우는 방법 등을 배운다.

지난 1월 단체협약에서 ‘감정노동 가치를 인정한다’는 합의가 이뤄진 데 따른 조치다. 홈플러스는 또 ‘이슈고객 응대 가이드라인’ 매뉴얼을 업데이트해 관리자들이 직원 정서를 실질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단순히 감정노동에 대한 금전적 보상보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직원들의 어려움을 미리 예방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치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마트 역시 지난해 5월 각 점포에 ‘컴플레인 고객 매뉴얼’ 공문을 배포했다. 현장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일선 직원 판단으로 팀장?점장 등 관리자를 호출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정도가 심해 직원이 직접 대하기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 자발적 판단으로 자리를 피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마트는 또 ‘신세계 영랑호 리조트 사원 패키지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들이 힐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난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마트 비정규직 직원을 포함해 대리급 이하 사원들은 객실과 함께 식사권 등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수찬 이마트 노조위원장은 “고객의 직원 폭행사건이 발생하면 회사가 구제 절차를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고객으로부터 부당한 폭언 등 심각한 감성적 훼손이 인정될 때는 직원에게 1시간의 마음관리 시간을 제공하는 등 실질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련 논의는 학계와 정치권에서도 진전되고 있다. 김인아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연구에 따르면 감정노동자들은 자살을 생각한 비율이 일반노동자보다 남성 3.7배, 여성은 3.5배 높았다.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25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0%가 고객에게 성희롱이나 신체 접촉을 당했으며, 81.1%가 욕설 등 폭언을 들었다고 답했다. 현재 한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은 사업주가 감정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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