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온 장애인]장애인 "국가 책임 미루는‘부양의무제’… 행정편의 발상 ‘장애등급제’"

입력 2013-01-3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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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장애인들이 지난 10일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있는 삼청동을 방문해 장애인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와 관련, 인수위원장과 면담을 요청했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소아마비를 딛고 헌법재판소장을 거쳐 최근 총리직까지 지명돼 장애인들의 ‘살아있는 신화’로 통한다. (사진=연합뉴스)

2011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장애인 출현율(인구 100명당 장애인 수)은 5.61%로 2005년 4.59%보다 1.02%P 올랐다. 추정 장애인구는 2011년 기준으로 268만3477명이다. 2000년 144만9496명, 2005년 214만8686명에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장애인 복지는 교통비 할인, 공공시설 무료 등 간접 지원에서 2007년 장애인 연금과 활동보조 서비스 도입을 계기로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서비스로 전환된다. 그러나 장애인들의 복지는 여전히 열악하다.

활동보조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은 대략 37만명으로 추산되지만 정부는 서비스 대상자 선정 기준을 1급장애인(약20만명)으로 제한했다. 최근 김주영, 파주 장애남매 등 장애인 사망 사건이 잇따르자 활동보조 지원을 2급까지 확대한 것이 전부다.

정부는 복지를 확대한다지만, 장애인등급제와 부양의무제로 인해 정작 지원이 필요한 사람은 배제되고 자활 의지를 꺾어 장애인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 빈곤을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부양의무제 = 서울 광화문역 지하에는 지난해 여름부터 큰 천막이 자리잡고 있다.

전국의 200개 장애인 관련 단체와 시민단체가 연대해 2012년 8월 8일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을 결성한 이후 지금까지 무기한 농성 중이다. 장애인 활동보조 지원이 특히 열악한 경기도를 비롯해 천안, 대전, 광주, 대구, 부산이 함께하며, 지난 26일에는 통합진보당 장애인위원회가 농성에 합류했다.

천막 맞은편에는 활동보조원이 떠난 지 한 시간 만에 화재로 사망한 김주영씨와 파주에서 생명을 잃은 장애남매 박지우양, 동생 박지훈군의 영정이 놓여 있다. 박군의 영정 앞에는 생전에 그가 즐겨 읽었다는 책 ‘올림포스 여신스쿨’과 손때 묻은 장난감 자동차가 놓여 있다.

조윤숙 통합진보당 장애인위원장은 “부양의무제는 가족과 사실상 관계를 끊고 살아도 호적상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 자격을 박탈하는 악법이다”고 말했다.

김정하 빈곤연대 활동가는 “부양의무제의 소득인정 기준이 매우 낮아 실제로 부양 능력이 없어도 수급을 정지한다”며 “정부는 부양의무제가 ‘효’와 사회적 미덕을 실현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국가가 개인에게 빈곤의 책임과 원인을 미루는 것”라고 꼬집었다.

◇ 장애등급제, 행정 편의용 지적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장애인들은 농성 150일을 맞아 지난 17일 오후 2시 보건복지부 앞에서 모여 새 정부 인수위가 있는 삼청동 금융연수원까지 행진했다. 이 자리에는 홈리스행동 이동현 집행위원장, 빈곤사회연대 김정하 활동가 등 관련 단체 관계자들도 함께했다. 이들은 부양의무제와 장애인등급제 폐지를 주장하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이를 요구하는 엽서 150장을 인수위에 넘겼다.

장애인등급제는 수년간 문제로 지적됐다. 장애인의 사회생활이나 주거상태, 욕구 등 사회적 기준은 배제하고 의학적 기준만으로 장애 등급을 판정한 뒤 서비스 종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대선 때 각 후보들은 장애인등급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놨지만 정부는 지난 2007년부터 오히려 등급제를 강화하고 있다. 당초에는 지정된 의료기관에서 등급을 판정받았으나 복지부가 장애인연금과 활동보조지원 등 직접 서비스를 확대하면서 국민연금공단 산하 장애인등급심사센터에서 등급재심사를 맡고 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장애등급제는 할인 등 간접제도가 주를 이뤘던 과거에는 유용했지만 직접 서비스가 중심인 현재는 되레 장애인을 복지 사각지대로 밀어낸다”며 “1급 내부장애자는 활동보조 지원이 필요없지만 3급 장애인 중에는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개인 사정이 아니라 등급으로 자르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장애인등급제가 행정 편의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등급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면 예산을 예측할 수 있고 등급에 따라 서비스 제공 범위와 대상자 수를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복지부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약 10만건의 장애등급 심사를 통해 약 3만명(36.7%)의 장애등급을 낮췄다. 이 가운데 등급이 상향조정 된 사람은 1%(350명)가 채 되지 않는다. 결국 장애인등급제가 행정편의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것이다.

남병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은 “북유럽은 등록조차 안 하고, 등급제가 있는 일본마저 없어지는 추세”라며 “대만처럼 다양한 사회적 기준을 고려하는 정책 도입을 통해 서비스 제공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기준에 따라 객관적으로 등급을 부여하는 대신 온정적으로 등급을 주는 경우가 있어 이를 개선코자 국민연금공단에서 전문적으로 등급심사를 하게 된 것”이라며“장애인연금제나 활동보조 지원 확대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등급제 이외에 인정조사나 소득 기준을 고려하는 등 점진적으로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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