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車랑나랑] '슈라이어 신드롬'…정의선 고민

입력 2010-07-0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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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디자인 경영 주역, 남아 있는 현대차가 숙제

최근 정의선 현대기아차 부회장의 행보가 빨라졌습니다. 모터쇼 신차 발표회장에선 직접 헤드 마이크를 걸고 "성장동력(모멘텀)을 이용해 적극적인 시장 공략에 나서겠다"고 공언하기도 합니다.

물론 언제나 현대기아차가 추종하고 있는 '품질경영'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도 합니다. 관련업계에서는 그의 빨라진 행보 뒤에 올 들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기아차의 선전이 뒷받침되고 있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입니다.

한때 기아차 최대약점은 디자인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실패작이 소형차 '리오'인데요. 알 수 없는 디자인 철학은 기아차 디자이너의 머릿속에만 있었습니다. 전문 자동차 디자이너의 눈에 리오는 'A학점 짜리 디자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 우리의 눈에는 그저 심하게 못생겼을 뿐이었습니다. 전문가와 소비자의 눈은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기아차 리오 디자인팀의 주요 책임자가 한때 젊은이들의 우상이자 우리의 심장을 방망이질쳤던 현대차 티뷰론 디자이너였다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정의선 현대기아차 부회장이 기아차에 몸담았던 시절, 그는 기아차 최대의 약점인 디자인을 뜯어고치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디자인 기아'를 전면에 내세웠던 것인데요. 큰 결심으로 독일 아우디에서 잔뼈가 굵었던 디자이너 '피너 슈라이어'를 영입해 디자인 담당 부사장(CDO)에 앉혔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없던 커다란 결정권을 쥐어줍니다.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부사장은 1990년대 말 아우디의 경량 로드스터 TT를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종종 '스케치북에서 튀어나온 차'를 디자인해온 것으로 유명한데요. 머릿속 상상을 2차원적인 모습으로 고스란히 녹여내는 재주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디자인은 언제나 세상을 깜짝 놀래키곤 했지요.

그렇게 얼마동안 페이스 리프트나 마이너 체인지 때 이제껏 볼 수 없었던 브랜드 아이덴티티 또는 약간의 통일성 정도가 도드라졌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요즘에서야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점진적인 디자인 변화는 기아차에게 날카로운 '엣지'를 가져왔고 그것은 기아차에게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 모두에게 도전이자 모험이었습니다. 결국 기아차 최대의 약점은 고스란히 최대의 강점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이렇듯 최근 현대차를 추월하며 선전하는 기아차를 볼 때마다 조금은 짜릿함을 느끼곤 합니다. 절대적 1인자가 주춤하는 상황을 적당히 즐기고 있는 것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시각을 바꿔보면 현대기아차 그룹의 핵심 임원을 비롯해 기아차의 도약을 이끌어냈던 주인공 정의선 부회장의 마음은 마냥 편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기아차의 성장동력을 주도했던 그에게 이제 현대기아차 그룹 전체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한다는 책임감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정의선 부회장의 고민은 시작됩니다. 여전히 그룹 총수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지만 정 부회장 역시 기아차 시절 스스로 쌓아올린 철옹성같은 경쟁력을 이제 하나의 브랜드가 아닌 현대기아차 전체에 확대해야할 역할이 주어졌으니까요.

물론 기아차 시절의 역량이 이제야 현실화된만큼 지금의 노력이 짧은 시간 안에 효과를 드러내기는 어려울지 모를 일입니다. 다만 기아차의 선전이 고스란히 현대기아차 전체로 이어진다면 항간에 떠도는 '승계구도'와 관련된 입방아를 단숨에 잠재울 수도 있는 기회일테니까요.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인 히딩크 감독이 연임을 고사했고,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의 위업을 달성한 허정무 감독 역시 위임을 사양했습니다.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뭇매"라는 뻔한 이유 때문일텐데요. 한걸음 물러난 뒤 다시금 혜성처럼 등장해 옛 영화를 재건하는 시나리오가 더 극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의선 현대기아차 부회장은 이런 고사의 기회조차 없는 상황입니다. 이제 '잘해야 본전'이 아니라 '한참 잘 해야 본전'인 상황이 됐습니다. 정 부회장을 비롯해 현대기아차 핵심임원들이 이를 깊게 깨닫고 어떻게 '본전'을 챙겨가는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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