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박덕배의 금융의 창] ‘반도체 호황 경제’ 선제적 위험관리를

입력 2026-11-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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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구조 양극화로 내수 회복 더뎌
가계부채 등 금융불안 땐 위기가중
공급망 강화해 충격 흡수력 키워야

2027년 한국경제는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견실한 성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세계적인 AI 투자 확대가 반도체 수출과 설비투자를 이끌고, 민간소비도 회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낙관적 전망의 이면에는 적지 않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대외환경 변화와 국내 금융불균형이 맞물리면 심각한 경제적 충격을 겪을 수도 있다.

올해 한국경제는 예상을 뛰어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0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3.3%로 상향 조정했다. 내년 전망치도 2.5%에서 2.8%로 높였다. 한국은행 역시 8월에 올해와 내년 성장률을 각각 3.3%, 2.9%로 전망한 데 이어 10월에는 두 해의 성장률이 이를 상당폭 웃돌 가능성을 제시했다. 반도체 수출과 설비투자가 성장을 주도하고 소비도 회복된다면 내년에도 양호한 성장률을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전망을 위협하는 대외 위험요인이 적지 않다. 가장 주목할 것은 AI 투자 열풍의 지속 여부다. 글로벌 AI 투자가 둔화하거나 반도체 가격이 조정되면 우리 수출과 설비투자가 함께 위축될 수 있다. 특정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수록 경기 변동이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도 커진다.

1990년대 후반 미국에서도 인터넷 혁명과 신경제에 대한 기대가 대규모 투자와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지나친 낙관론은 2000년 닷컴버블 붕괴로 이어졌다. 물론 오늘날 AI 산업은 당시와 달리 상당한 매출과 이익을 창출하는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기술혁명에 대한 기대가 과도한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은 경계해야 한다. AI 투자 열기가 식는다면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가 충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통상정책 변화와 미·중 갈등은 수출과 공급망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은 국제유가와 물류비용을 높일 수 있으며, 주요국의 금리정책 변화는 환율과 국제자본 이동에 영향을 미친다. 물가 불안으로 고금리가 장기화하면 세계경제의 성장세가 둔화하면서 한국의 수출 여건도 악화될 수 있다.

대내적으로는 산업과 자산시장의 양극화가 우려된다. 반도체와 일부 대기업이 호황을 누리는 반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건설업 등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도 반도체 대형주에 상승세가 집중되면서 중소형주 투자자들은 소외될 수 있다. 뒤늦게 투자에 뛰어들거나 차입을 통해 투자한 개인들은 시장 조정 시 큰 손실을 입을 위험이 있다. 이런 양극화는 내수 회복을 제약하고 경제의 충격 흡수 능력을 약화시킨다.

더 우려되는 것은 가계부채와 부동산시장 불안이다. 우리 경제는 부동산을 중심으로 막대한 가계부채를 쌓아 왔다. 높은 부채 수준은 소비 여력을 제약할 뿐 아니라 금리 상승이나 소득 감소 시 경제 전체 취약성을 높인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의 주택가격 상승으로 부동산시장에 자금이 집중되는 현상도 경계해야 한다.

스위스 금융그룹 UBS가 지난 9월 발표한 ‘2026년 글로벌 부동산 버블지수’에 따르면 서울은 조사 대상 23개 도시 가운데 버블 위험이 다섯 번째로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최근 1년간 실질 주택가격도 약 10% 상승해 주요 도시 중 가장 높은 상승세를 보였다. 버블 위험이 높다는 평가가 곧 가격 폭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주택가격과 소득 등 기초여건 사이의 불균형이 커지고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가계부채와 부동산시장의 위험은 연결되어 있다. 주택가격 상승은 추가 차입을 자극하고, 반대로 가격이 급락하면 가계의 자산가치와 담보가치가 함께 하락한다. 여기에 경기 둔화와 금리 부담이 겹치면 소비 위축과 금융기관의 부실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취약 차주의 문제까지 맞물리면 금융불안이 실물경제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내년 경제정책은 성장세 유지와 위험관리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수출시장과 산업구조를 다변화하고, 공급망과 에너지 수급의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대내적으로는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관리하고 부동산시장의 과열을 억제하되, 급격한 가격 조정이 금융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취약 차주와 부실 부동산 사업장에 대한 선별적 구조조정, 금융기관의 손실 흡수 능력 강화도 중요하다.

경제위기는 외부 충격만으로 발생하는 게 아니다. 국내 축적된 취약성이 외부 충격과 결합할 때 위기 규모가 커진다. 성장세가 양호한 지금이야말로 취약성을 줄이고 대응 능력을 높일 적기다. 2027년 한국경제의 성패는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성장 기회를 얼마나 활용하고, 그 이면의 위험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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