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직접 투자 대신 대기업 현지 위탁생산 구상
업계, 한국산 예외·신속 승인 등 정부 대응 요청

국내 인증·안전 규제에 발목이 잡힌 로봇기업들이 해외 시장 진출 과정에서도 또 다른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미국이 해외 생산 첨단로봇의 신규 인증을 제한하면서 수출을 위해 생산시설과 부품 공급망까지 재검토해야 하는 처지다. 업계에서는 미국 생산 기반을 갖춘 대기업에 제조를 맡기는 ‘로봇 파운드리’ 방식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올해 7월 28일부터 해외에서 생산한 첨단 이동로봇의 신규 장비 인증을 제한하고 있다. 휴머노이드와 자율주행로봇(AMR), 4족 보행로봇 등이 일정 요건에 해당하면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신규 제품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면 조건부 승인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도 대응에 나섰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조건부 승인 절차를 추진하고 있으며 티로보틱스는 지난달 AMR과 무인운반차(AGV) 제품군에 대해 미국 전쟁부의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관건은 생산과 부품 공급망이다. 규제상 미국산 완제품으로 인정받으려면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제조하고 전체 부품 원가에서 미국산 부품 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65%를 넘어야 한다. 단순히 최종 조립 장소만 미국으로 옮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시장 진입을 준비하는 중소기업에는 현지 생산시설과 공급망을 동시에 갖추는 일이 큰 부담이다. 한 로봇업계 관계자는 “로봇기업들이 로펌을 통해 미국 수출 관련 자문을 받고 있지만 FCC 인증 기준을 맞추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 여러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미국 생산 기반을 갖춘 대기업과 국내 로봇기업이 역할을 나누는 방안이 거론된다. 중소기업이 설계와 핵심 기술을 제공하고 대기업이 현지 제조를 맡는 구조다. 미국산 부품 요건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 조달망도 함께 활용하자는 구상이다. 반도체 설계기업이 생산을 파운드리에 맡기듯 로봇기업도 제조를 외부에 맡겨 미국 진출 비용을 낮추자는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위탁생산 계약이 체결된 단계는 아니지만 개별 기업이 공장을 짓는 것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휴머노이드 업체 대표는 “FCC를 우회하는 방법으로 미국 현지 공장을 활용하는 방식을 검토해볼 수 있다”며 “삼성이나 현대차, LG 등 이미 미국에 생산 기반을 갖춘 대기업, 특히 현지에서 로봇 공장을 운영하는 곳에 국내 로봇기업들의 요청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은 정치권에 한국산 제품의 예외 인정이나 신속 승인 절차인 ‘패스트트랙’ 신설 등 정부 차원의 대응을 요청하고 있다. 다만 국가안보를 근거로 한 인증 규제인 만큼 관세 협상처럼 접근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특정 국가에 예외를 인정한 사례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