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반도체 강국의 마지막 퍼즐, 소부장

입력 2026-10-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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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시장에 묘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인공지능(AI) 거품론이 불거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형주의 주가가 흔들리는 사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은 오히려 강세를 보이고 있다. AI 투자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지만 반도체 생산시설에 대한 투자 기대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의미다.

주가의 엇갈린 흐름보다 눈여겨볼 대목은 따로 있다. 세계적인 반도체 제조 강국인 한국이 과연 반도체 산업 전반에서도 강국이라고 자신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상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글로벌 메모리 시장을 이끌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는 AI 시대 한국 반도체의 기술력을 상징한다. 그러나 반도체를 잘 만드는 것과 이를 만드는 기술까지 갖추는 것은 다르다.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일부 노광·검사·계측 장비와 핵심 소재는 여전히 해외 의존도가 높다. 국내 소부장 기업들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지만 기술 자립까지는 갈 길이 멀다.

이러한 구조는 반도체 산업이 호황일 때보다 위기에 직면했을 때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거나 주요국이 첨단 기술과 장비의 수출을 제한하면 생산능력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2019년 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규제는 이를 일깨워준 사건이었다. 이후 정부와 기업은 국산화와 공급망 다변화에 힘을 쏟았고 일부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 세계 시장에서 독자적인 기술로 경쟁할 수 있는 소부장 기업이 얼마나 늘었느냐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기술 자립이 모든 장비와 소재를 국내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반드시 필요한 기술을 확보하고, 공급망의 선택지를 넓히며, 한국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소부장 기업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반갑다. 다만 주가 상승이 곧 기술 경쟁력의 향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업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혜인지, 독자적인 기술과 글로벌 고객사를 확보한 결과인지 냉정하게 구분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소부장 산업 육성을 위한 특화단지 조성과 연구개발 지원도 중요하지만, 지원의 성과를 투자 규모나 국산화 품목 수로만 평가해서는 곤란하다. 국내 대기업에 납품하는 수준을 넘어 해외 반도체 기업들이 먼저 찾는 기술을 확보하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중소·중견기업이 오랜 시간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기술 개발을 지속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투자 환경을 마련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자본시장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기술력을 갖춘 소부장 기업이 장기적인 성장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돕기보다 단기적인 주가 등락과 테마에만 관심을 쏟는다면 산업 생태계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반도체 산업은 다시 한번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AI 투자 열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메모리 가격이 어디까지 오를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수록 생산능력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 생태계의 중요성도 커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은 이미 세계가 인정하는 반도체 제조 강국이다. 이제는 그 반도체를 만드는 기술에서도 세계가 인정하는 강국이 돼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을 넘어, 세계 반도체 기업들이 먼저 손을 내미는 소부장 기업이 많아져야 한다.

반도체 강국의 완성은 공장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을 채우는 기술의 깊이에 달려 있다. 지금 한국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공장만이 아닌 어디에서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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