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연속 공정 한계” vs 노동계 “과로 조장” 팽팽한 평행선

정부가 반도체 메가프로젝트의 신속한 투자를 위해 산업단지 인허가 패스트트랙을 꺼내 들었지만, 초격차 확보의 핵심인 연구개발(R&D) 인력 근로시간 특례를 둘러싸고는 노사정 간 이견이 팽팽해 최종 합의까지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25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23일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규제 합리화 방안'은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공장(팹) 건설과 기술 개발 속도를 다투는 '시간의 싸움'으로 변모했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 기존에 순차적으로 진행되던 산단 기획·인허가·설계를 동시에 병행 처리하는 패스트트랙을 도입하고, 팹 건설 및 통관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등 물리적인 투자 대기 시간 단축에는 과감히 속도를 낸다.
하지만 반도체 초격차 확보의 또 다른 축인 'R&D 인력 근로시간 특례' 부문에서는 한발 물러선 모양새다. 정부는 이날 "적절한 보상과 건강권 보호 조치를 전제로 노동계·경영계와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며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당장 입법을 촉구하는 산업계와 노동권 훼손을 우려하는 노동계가 팽팽하게 맞서면서 '도입 확정' 대신 '검토'로 수위를 조절한 것이다.
공을 넘겨받은 국회 역시 입법 전선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20일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초광역권전략산업특구 내 상위 3% R&D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예외 등을 담은 '초광역특구법'을 발의했으나, 같은 당 최기상 의원은 당내 이견과 노동계 반발을 반영해 특례를 전면 제외한 법안을 별도 발의해 병합 심사에 부치기로 했다.이에 민주당은 여야가 참여하는 '메가특구 특별위원회' 구성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11월 본회의에서 특위 구성 결의안을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결의안 통과 이후 여야가 특위에서 법안 내용을 논의 및 협상해 연내 본회의를 통과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처럼 정치권이 연내 처리를 목표로 속도를 내는 가운데 협상의 최대 뇌관으로 꼽히는 노동 특례를 둘러싼 산업계의 목소리도 완강하다.
산업계가 근로시간 유연화를 강하게 요구하는 배경에는 반도체 R&D 현장 특유의 '데드라인'과 '연속성'이 있다. R&D 팹에서 수율 개선을 위해 웨이퍼를 투입하면 식각·증착 등 미세 공정이 수십 시간 동안 멈춤 없이 이어져야 한다.
이때 엔지니어가 주 52시간 한도에 걸려 업무를 중단하면 실험 중이던 웨이퍼를 전량 폐기하고 챔버 조건을 다시 설정해야 해 수개월의 일정이 밀리게 된다. 또한 파운드리에 칩 설계를 넘기기 직전인 '테이프아웃' 기간은 핵심 설계자가 며칠 밤을 새워 에러를 잡는 '크런치(초집중)' 구간인데, 제한 시간 탓에 파운드리 셔틀 일정을 놓치면 신제품 양산 시점 자체가 반년가량 뒤처지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현행 제도인 특별연장근로나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이러한 돌발 변수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별연장근로는 고용노동부의 행정 인가와 개별 동의를 거쳐야 하고, 인가를 받더라도 주 최대 64시간 한도와 11시간 연속 휴식 의무가 있어 긴밀한 연구 흐름이 끊긴다는 것이다.
이에 박 의원안은 관공서 인가 대신 '노사 서면합의'만으로 작동하는 '한국형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구조를 제시했다. 비수도권 '초광역특구' 내, '근로소득 상위 3%' R&D 전문 인력으로 대상을 좁히되 이들에 한해 주 52시간 상한을 전면 배제하고,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최대 6개월로, 기간제 한도를 4년으로 연장하는 3중 유연화 장치를 뒀다.
그러나 노동계의 반발은 거세다. 양대 노총은 국가핵심기술 보안 규정상 재택근무조차 차단된 통제 환경에서 근로시간 상한마저 풀릴 경우 연구원들의 장시간·과로 노동이 합법화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기간제 4년 연장 역시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만 키운다는 비판이다.
정부 부처 간 미묘한 시각차도 변수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22일 국정감사에서 "정기국회 내 반드시 처리되길 바란다"며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지만, 고용노동부는 "시한을 정하지 않고 충분한 숙의를 거쳐 사회적 대화로 풀겠다"며 속도 조절에 방점을 찍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