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구덕운동장, 축구장만 지을 것인가…나가사키 1000억엔 복합개발이 던진 질문

입력 2026-10-13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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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덕은 부산 원도심의 나가사키 스타디움 시티가 될 수 있을까

▲나가사키 시티 스타디움 전경 (사진제공=나가사키V바렌)
▲나가사키 시티 스타디움 전경 (사진제공=나가사키V바렌)

12일 월요일 오후, 나가사키 피스 스타디움에는 경기가 없었다.

그런데도 관중석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경기장 안 음식점에서 포장해 온 음식과 음료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스탠드 뒤편 테이블에는 노트북을 펴고 일하는 사람도 보였다. 경기장에는 무료 와이파이가 깔려 있었다.

경기가 없는 날 관중석은 시민에게 무료로 개방된다. 축구를 보러 온 사람이 아니어도 좋아하는 좌석에 앉아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기자와 만난 재팬넷의 아카이네 란 씨는 스타디움 시티의 구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스타디움 시티 자체가 경기가 없는 날에도 개방돼 공원처럼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이라는 것이 콘셉트다. 언제든 좋아하는 좌석에 앉아 음료나 음식을 즐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녀는 또 "처음부터 스타디움을 중심에 두고 주변에 호텔과 상업시설, 오피스를 배치하는 구상을 진행했다"며 "일상과 축구 경기의 공존을 목표로 한 구조"라고 밝혔다.

▲나가사키 스타디움시티의 구조 (서영인기자 @hihiro)
▲나가사키 스타디움시티의 구조 (서영인기자 @hihiro)

부산 구덕운동장 재개발이 고민해야 할 것도 바로 이것이다. 경기장을 얼마나 크게 지을 것인가를 넘어, 경기가 없는 날에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공간을 만들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1000억엔을 투자해 경기장 하나가 아닌 도시를 만들다

나가사키 스타디움 시티의 공식 사업비는 약 1000억엔이다. 2024년 10월 문을 연 이 복합시설은 약 2만 석 규모의 축구전용구장을 중심으로 호텔과 상업시설, 오피스, 약 6000석 규모의 농구 아레나 등을 집적했다.

경기장 자체도 관중에게 가깝다. 피치와 관중석 사이가 가까워 선수들의 움직임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라커룸과 기자회견실, 선수단 벤치 등을 둘러보는 스타디움 투어도 운영한다. 경기장 지붕 사이를 가로지르는 짚라인 등 체험시설도 갖췄다.

하지만 이곳의 특징은 시설의 숫자에 있지 않다.

▲나가사키 스타디움 시티 푸드코트, 경기가 없는 날도 시민들로 붐빈다 (서영인기자 @hihiro)
▲나가사키 스타디움 시티 푸드코트, 경기가 없는 날도 시민들로 붐빈다 (서영인기자 @hihiro)

축구를 보러 온 관중은 식당과 상점을 이용하고, 호텔 투숙객은 객실에서 경기장을 바라본다.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쇼핑과 식사, 여가를 위해 찾아온다. 경기가 없는 날에는 시민들이 관중석에 앉아 쉬거나 일한다.

경기장 하나에 여러 방문 목적을 연결한 것이다.

방문객 535만 명…경제효과 연간 378억 엔 추산

재팬넷과 나가사키 스타디움 시티가 2026년 10월 발표한 개장 2주년 자료에 따르면, 개장 첫해 방문객은 470만 명이었으며 2년 차에는 535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집계됐다. 당초 연간 방문객 목표는 약 850만 명이었고, 2027년 목표는 600만 명이다.

방문객 수만큼 눈여겨볼 수치는 경제적 파급효과다.

후나이종합연구소가 발표한 통합 영향 평가에 따르면 나가사키 스타디움 시티의 나가사키현 내 연간 경제파급효과는 약 378억3,000만 엔으로 추산됐다. 이 가운데 약 178억 엔은 그룹 외부로 파급되는 효과로 분석됐다. 연간 약 28억 엔의 세수 증가 등 재정 기여와 4,607명의 고용 유발 효과도 추산됐다. 이는 실제 확정 실적이 아니라 연구기관의 분석에 따른 추정치다.

물론 방문객 수가 곧바로 사업의 수익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 수익과 운영비, 고용의 질, 주변 상권에 미친 영향은 따로 살펴봐야 한다.

그럼에도 나가사키 사례가 보여주는 방향은 분명하다. 경기장 하나를 짓는 데 그치지 않고, 스포츠와 숙박·쇼핑·업무·여가를 연결하면 시설을 찾는 이유가 다양해지고 방문객의 체류와 소비를 늘릴 기회도 생긴다.

객실에서도, 대욕장에서도 경기장이 보인다

이 복합개발의 연결 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경기장과 직접 이어진 스타디움 시티 호텔이다.

'스타디움 뷰' 객실을 예약하면 방 안에서 경기장을 내려다볼 수 있다. 취재를 위해 직접 객실을 예약 2박동안의 취재를 진행했다.

조식 식당과 로비에서도 피치가 보인다. 호텔 안 대욕장과 수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경기장과 호텔은 서로 다른 시설이지만 고객을 공유한다. 경기를 보러 온 관중은 식당과 상점을 이용하고, 투숙객은 경기장을 바라보며 머문다.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쇼핑과 식사, 체험시설을 이용하러 온다.

시설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동선을 설계한 것이다.

▲사우나에서 경기장이 보이도록 한 설계다. (사진제공=나가사키 스타디움시티)
▲사우나에서 경기장이 보이도록 한 설계다. (사진제공=나가사키 스타디움시티)

대욕장 사우나에서 만난 나가사키 시민 하야시 하루토 씨(26)는 자신을 V·바렌 나가사키의 팬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에게 스타디움 시티는 축구장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공간이었다.

하야시 씨는 "V·바렌의 팬이기도 하지만 이 시설은 나가사키의 자랑이기도 하다. 프라이드를 느낄 수 있는 시설이고, 이런 시설이 나가사키에 있다는 것은 후쿠오카에 못지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후쿠오카와 오사카로 빠져나간 인구를 언급하며 지역의 미래에 대한 기대도 드러냈다.

"후쿠오카와 오사카로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런 문화와 시설들로 일자리가 창출된다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스타디움 시티를 향한 기대는 경기장 규모나 축구 성적에만 머물지 않았다. 지역의 자부심을 높이고 일자리를 만들어 젊은 세대가 돌아올 수 있는 기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부산의 목표는 외국인 관광객 500만 명

부산은 외국인 관광객 500만 명 시대를 목표로 관광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시는 2025년 12월, 2028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500만 명 유치와 연간 외국인 관광객 소비액 1조5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관광객 숫자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재수시장의 말처럼 관광객이 어디를 방문하고, 얼마나 오래 머물며, 어디에서 돈을 쓰는지가 중요하다.

나가사키에서는 크루즈터미널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인근 오우라 천주당을 둘러본 뒤 노면전차를 타고 스타디움 시티로 이동하는 경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자도 이들과 함께 전차를 타고 약 20분을 이동해 현장에 도착했다.

모든 크루즈 관광객이 스타디움 시티를 방문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항구와 관광지, 복합시설을 연결할 수 있는 동선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구덕이 축구 경기 때만 찾는 장소가 아니라 관광객이 머물고 소비하는 공간이 된다면 부산 원도심 관광의 범위도 넓어질 수 있다.

HDC와 부산시가 나가사키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

여기서 구덕 재개발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구덕운동장에 축구전용구장을 짓는 사업으로 접근하면 핵심은 경기장 건립비와 좌석 수, 시설 운영비가 된다. 하지만 구덕을 원도심 복합거점으로 설계한다면 질문이 달라진다.

사람을 어떻게 불러오고, 얼마나 오래 머물게 하며, 그 과정에서 어떤 소비와 일자리를 만들 것인가.

이 지점에서 HDC와 부산시가 나가사키 스타디움 시티를 참고할 이유가 생긴다.

HDC그룹은 주거와 도시개발뿐 아니라 쇼핑·문화·레저·호텔 등 여러 사업 분야를 보유하고 있다. 그룹 공식 자료는 IPARK현대산업개발의 복합개발 역량, IPARK몰의 상업·문화·엔터테인먼트 기능, 호텔IPARK의 호텔 자산 개발·운영 등을 주요 사업으로 소개한다.

물론 HDC가 구덕을 나가사키와 같은 방식으로 개발하기로 결정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주거·상업·호텔·여가 기능을 결합하는 복합개발 모델을 구상할 때 HDC가 가진 사업 역량을 검토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의미다.

가령 구덕운동장 재개발을 축구전용구장 하나로 한정하지 않고, 경기장과 상업시설, 호텔, 주거, 행정 기능을 집적하는 장기적인 도시 구상으로 확장해 보는 것이다.

이른바 가칭 '구덕 HDC 시티'다.

축구전용구장을 중심으로 아이파크 주거시설과 아이파크몰 같은 쇼핑·문화공간, 파크 하얏트와 같은 고급 호텔 모델, 서구청 등 행정 기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그림이다. 이는 확정된 사업계획이 아니라 구덕의 미래를 놓고 검토할 수 있는 하나의 구상이다.

그렇게 되면 구덕은 경기일에만 사람이 몰리는 시설이 아니라 평일에도 방문객과 소비가 발생하는 공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부산항 크루즈 관광객과 원도심 방문객의 체류를 늘리고, 상업·숙박·서비스 분야의 일자리를 만들며, 서구의 생활·행정 거점을 강화하는 효과도 검토할 수 있다.

교통 접근성, 보행 동선, 관광 콘텐츠, 시설별 수요, 운영 주체와 비용 분담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개발이익과 공공기여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민의 체육시설 이용권을 보장해야 한다.

주상복합은 무조건 특혜인가

복합개발의 현실적인 쟁점은 사업성이다.

축구전용구장과 호텔, 상업시설을 함께 조성하려면 막대한 초기 투자비가 든다. 준공 이후에는 시설 유지·보수비와 운영비도 발생한다. 경기장 수입만으로 사업비와 운영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면 민간 투자를 어떤 구조로 끌어들일지가 핵심이다.

사업성을 보완하기 위해 주상복합을 허용하는 방안이 거론될 경우 특혜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그러나 주거시설이 포함된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특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반대로 도시재생이나 복합개발이라는 명분만으로 주거시설을 무제한 허용할 수도 없다.

따져야 할 것은 개발이익과 공공기여의 구체적인 조건이다.

주상복합 허용으로 발생하는 개발이익은 얼마인가. 민간 사업자는 그 대가로 경기장 건립과 장기 운영, 공공체육시설 조성에 어느 정도 책임을 지는가. 시민의 체육시설 이용권은 어떻게 보장되는가. 공공이 부담해야 할 비용과 사업 위험은 어디까지인가.

구덕은 부산 원도심의 나가사키 스타디움 시티가 될 수 있을까

나가사키 스타디움 시티와 부산 구덕운동장의 차이는 경기장 규모가 아니다. 경기장을 도시 안에 어떻게 배치하고, 주변의 사람과 소비, 일자리로 연결하느냐에 있다.

나가사키는 약 1,000억 엔을 투자해 경기장과 호텔, 상업시설, 오피스, 농구 아레나를 결합했다.

개장 2년 차 방문객은 535만 명으로 늘었고, 연구기관은 연간 경제파급효과를 약 378억 엔으로 추산했다. 당초 목표에 아직 도달하지 않았지만, 방문객 증가와 경제효과를 수치로 확인하고 다음 단계의 운영 목표를 세우고 있다.

부산은 외국인 관광객 500만 명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면 관광객을 부산으로 불러들이는 것과 함께, 부산에 도착한 관광객이 어디에서 머물고 소비할지에 대한 공간 전략도 필요하다.

▲나가사키 V바렌 홈구장 피스스타디움과 스타디움시티호텔 (서영인기자 @hihiro)
▲나가사키 V바렌 홈구장 피스스타디움과 스타디움시티호텔 (서영인기자 @hihiro)

구덕이 그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축구전용구장 건립으로 끝낼 것인가. 아니면 HDC의 복합개발 역량과 부산시의 도시계획을 결합해 아이파크 주거시설, 쇼핑·문화공간, 호텔, 서구청 등 행정 기능이 연결되는 원도심 거점으로 발전시킬 것인가.

해사법원 유치와 서구청 이전이 현실화한다면 구덕을 중심으로 행정과 업무, 체육과 관광을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물론 해사법원 유치와 서구청 이전은 확정된 사업으로 전제할 수 없으며, 교통·재원·입지·운영 문제를 따져야 한다.

나가사키의 모델을 그대로 옮겨올 수는 없다. 부산의 도시 규모와 관광 수요, 사업 여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장 하나를 짓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찾아와 머물고 소비하며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는 방향은 구덕에도 유효하다.

"구덕은 부산 원도심의 나가사키 스타디움 시티가 될 수 있을까."

HDC와 부산시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질문이다. 구덕에 필요한 것은 축구장 하나가 아니라 부산 원도심의 사람과 경제를 다시 움직이게 할 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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