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엔지니어링, 견적·가공 노하우 체계화
-후계자는 CNC 실무 익히며 신규 창업 검토

서울 문래동 기계·금속 소공인의 가업승계가 단순한 사업체 이전을 넘어 창업세대의 경험을 데이터로 축적하고 후계자의 독립경영 역량을 키우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10일 한국가업승계협회에 따르면 서울 문래동 선풍엔지니어링은 그간 쌓아온 견적·가공·고객 대응 전략을 인공지능 전환(AX)과 디지털 전환(DX)을 통해 체계화하고 동시에 후계자의 신규 창업을 검토 중이다.
선풍엔지니어링은 서울소공인협회 산하 서울문래기계금속소공인특화지원센터가 추진한 ‘2026 문래 청년소공인 가업승계 지원사업’ 참여기업이다. 서울소공인협회와 한국가업승계협회는 업무협약을 토대로 교육과 멘토링, 기업별 일대일 현장 컨설팅을 진행했다. 사업 총괄은 김봉수 한국가업승계협회 이사장 겸 컨설팅학 박사가 맡았다.
이번 사업은 소유권을 넘기는 데 앞서 기업을 ‘경영 승계가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창업세대의 기술과 견적 기준, 거래처 관리 노하우를 기록 가능한 경영자산으로 전환하고, 후계자가 생산과 고객 대응 등 경영 실무를 단계적으로 맡도록 하는 방식이다.
1999년 문을 연 선풍엔지니어링은 기계부품 가공업체다. 복합 컴퓨터수치제어(CNC) 장비를 활용해 기계부품을 주문 제작한다. 설비 자체보다 고객의 요구를 해석해 실제 제작 가능한 제품으로 구현하는 게 경쟁력으로 꼽힌다.
최순규 선풍엔지니어링 대표는 “손님이 한마디를 하면 두세 마디를 알아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완성된 도면이 없어도 고객이 원하는 기능과 용도를 파악해 소재와 공정, 제작 방향을 결정하려면 오랜 경험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번 컨설팅의 핵심 과제는 이 같은 경험과 노하우를 후계자에게 이전하는 것이었다. 최씨는 견적 작성과 계산서 발행, 기존 거래처 응대, CNC 가공 등 생산·경영 실무에 참여한다. 직접 견적을 산출한 뒤 최 대표의 확인을 받는 방식으로 업무 범위를 넓히고 있다.
최근 문래 제조 현장에서는 세대별 역할 분담이 감지된다. 창업 1세대가 범용기계와 수동 가공을 통해 축적한 현장 경험과 가공 감각에 강점이 있다면, 젊은 후계자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작동하는 머시닝센터(MCT)와 복합 CNC 등 자동화 설비를 상대적으로 빠르게 익힌다. 선풍엔지니어링에서도 최 대표는 고객 요구를 해석하고 가공 가능성과 제작 방향을 판단하는 역할을, 최씨는 CNC 프로그램과 디지털 가공설비를 운용하는 역할을 주로 맡는다.
문제는 고난도 가공이나 예외적인 주문의 판단 기준, 고객별 특성과 대응 방식이 여전히 창업주의 경험과 기억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가업승계협회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승계 과정에 AX와 DX를 접목했다.
대표가 견적을 산출하는 과정과 소재·공구 선택, 가공 조건, 불량 및 고객 불만 대응 사례를 음성·사진·문서로 기록하고 AI를 활용해 일정한 형식으로 정리하는 방식이다. 이를 검색 가능한 자료로 축적하면 후계자가 과거 작업 사례와 당시의 판단 근거를 확인해 유사 업무에 활용할 수 있다.
다만 AI가 숙련기술자의 판단을 대신하는 건 아니다. 치수와 공차, 소재 등 생산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보는 작업자가 최종 확인하도록 했다. 대규모 시스템을 한꺼번에 구축하기보다 견적서와 작업지시서, 가공 사례 등 반복적으로 활용하는 정보부터 데이터화했다. 인력과 자원이 부족한 소공인의 현실을 고려한 접근이다.
외부 전문가가 창업주와 후계자 사이의 의사소통을 중재한 것도 이번 사업의 특징이다. 최 대표는 경영 문제를 아들에게 직접 이야기할 때보다 외부 전문가가 이를 객관적인 경영 과제로 정리해 설명했을 때 후계자가 더 수월하게 받아들였다고 평가했다.
한국가업승계협회장 김봉수 박사는 “소공인의 가업승계는 부모 회사의 명의나 기계를 넘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며 “대표가 축적한 기술과 견적 기준, 거래처 관계를 다음 세대가 활용할 수 있는 경영자산으로 만들고 후계자가 자신의 책임 아래 성과를 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풍엔지니어링은 후계자가 별도의 사업 기반을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기존 회사를 법인으로 전환하는 대신 최씨가 신규 창업을 통해 독립경영 역량을 쌓는 구상이다. 최씨는 기존 회사에서 익힌 CNC 가공과 견적, 고객 대응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현재 외부에 맡기는 일부 공정을 직접 수행하고 필요한 설비를 단계적으로 갖춰 신규 고객과 일감을 확보하는 방안 등이 대상이다. 구체적인 사업 형태와 투자 규모는 시장성과 자금 여건을 따져 결정할 계획이다.
김 박사는 “소공인은 기업 규모와 기술, 가족관계가 모두 달라 하나의 방식으로 승계를 설계하기 어렵다”며 “후계자가 별도 사업에서 경영 능력을 키운 뒤 기존 기업과 단계적으로 역할을 연결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