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는 9월 들어서도 기록적인 늦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9월에만 35℃를 넘어서는 맹서일이 여러 날 예보돼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본 전역에서는 여전히 폭염에 맞서는 다양한 대안이 속속 이어지고 있다. 찬물을 부어먹는 컵라면이 등장하는 한편, 반려동물의 열사병 위험이 커지면서 한낮 산책 주의보도 내려졌다. 급기야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일본 고교야구는 선수들의 폭염 노출을 줄이고 건강을 위해 9이닝 경기를 7이닝으로 단축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일본 최대 즉석면 업체인 닛신식품은 올여름 뜨거운 물 대신 찬물로 만드는 ‘히야시 컵누들’을 선보였다. 1971년 컵라면이 처음 등장한 이후 55년 만에 처음 나온 ‘냉수 전용’ 제품이다.
조리법은 간단하다. 냉장고에서 꺼낸 찬물을 컵에 붓고 5분만 기다리면 된다. 닛신식품은 찬물에서도 면이 풀리면서 탄력과 매끄러운 식감을 유지할 수 있는 특허 기술인 ‘콜드 리하이드레이트(Cold Rehydrate) 제조법’을 개발했다. 회사 측은 제품 개발에 5년이 걸렸다고 밝혔다.
지난 7월 20일 전국에 한정 출시했다. 가격은 약 285엔(약 2500원)이다.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닛신식품은 애초 준비한 물량이 1~2개월 정도 판매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불과 일주일 만에 완판됐다. 구체적인 판매량은 공개하지 않았다.
단순한 이색 상품을 넘어 재난용 비상식으로서의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다. 물을 데울 전기나 가스가 없어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닛신식품 측에는 비상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소비자 반응도 접수됐다. 회사는 이번 판매 결과 등을 토대로 증산이나 연중 판매, 추가 제품 출시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일본에서는 올여름 반려견과 고양이의 열사병 위험도 새로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TV아사히 보도에 따르면 일본에서 올해 7월 열사병으로 병원에 응급 이송된 사람만 4만 명을 넘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세 번째로 많았다.
문제는 사람보다 체온을 낮추기 어려운 개와 고양이다. 사람은 더우면 온몸에서 땀을 흘려 체온을 떨어뜨린다. 반면 개와 고양이는 사람처럼 몸 전체에서 땀을 흘릴 수 없다.
TV아사히는 “개와 고양이는 발바닥 등에만 땀샘이 있어 사람보다 체온을 낮추는 효율이 떨어진다”며 “특히 개는 입을 벌리고 빠르게 호흡하는 ‘팬팅(panting)’을 통해 열을 배출하지만 고온다습한 환경에서는 이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몸 안에 열이 쉽게 축적된다”고 설명했다.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기온이라고 해서 반려견에게도 안전한 것은 아니다. 한낮의 아스팔트는 햇볕을 그대로 받아 기온보다 훨씬 높은 온도까지 올라간다. 몸이 지면에 가까운 반려견은 뜨거워진 지면에서 올라오는 복사열에 직접 노출되고 발바닥 화상 위험도 커진다.
실제 일본에서는 반려묘가 열사병으로 목숨을 잃은 사례도 소개되면서 반려동물의 냉방 관리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폭염은 일본의 대표적인 여름 스포츠도 야구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도쿄신문의 7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갑자원 대회)는 9이닝 대신 7이닝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발단은 일본고교야구연맹이 “매년 심해지는 폭염으로부터 학생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현재 9이닝까지 치르는 경기를 7이닝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직후 시작했다.
갑자원 대회는 전국에 경기가 생중계될 만큼 국민적 관심이 높다. 올해 대회가 108회째일 정도로 역사와 전통도 깊다. 일본고교야구연맹은 경기 시간을 줄이는 것에 앞서 한낮 경기를 피하는 방법부터 시도했다. 8월 대회에서는 경기 일정을 오전과 오후로 나누는 2부제를 실시했다. 그러나 이런 대책에도 대회 기간 선수 16명에게 온열질환 의심 증상이 발생하면서 대회 종료 후 7이닝제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문제는 고교야구계의 반발이다. 반대 측에서는 7이닝제가 선수들의 건강을 보호할 수는 있지만 고교야구 특유의 경기 흐름과 극적인 승부를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야구는 3회마다 흐름이 바뀐다. 큰 이변이 없는 한 9명의 타자가 타석에 들어설 수 있다. 7이닝제가 이런 흐름을 깰 수 있다는 반대 의견도 나왔다.
TV아사히는 “갈수록 뜨거워지는 일본의 여름이 이제 생활 방식은 물론 세대를 이어온 문화와 전통의 규칙까지 다시 쓰고 있다”고 전했다. 도쿄신문은 "7이닝제가 도입되면 고교야구의 근간이 바뀌는 것"이라며 "현장에서는 9이닝제를 유지하길 바라는 목소리가 많다"고 보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