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구 대법관 “비상계엄 후 대법원, 국민에 입장 제대로 전달 못해”

입력 2026-09-0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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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구 대법관이 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이흥구 대법관이 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이흥구 대법관이 7일 퇴임하면서 12·3 비상계엄 이후 대법원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국민에게 법원 입장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사건이 법원에 몰릴수록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일관된 법리와 충실한 논증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이 대법관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12·3 비상계엄 후 벌어진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대법원이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국민들께 법원의 입장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거나 실패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법원이 말해야 할 때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 점점 말할 기회조차 잃게 된다는 냉정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며 “정치적 사건이 법원으로 몰려들수록 정치의 문법에서 벗어나 법원의 언어와 문법으로 일관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대법관은 ‘정치의 문법’은 진보와 보수 등 진영 간 대결과 이해관계에 따른 사실의 재해석·단순화를 특징으로 하는 반면, ‘법원의 문법’은 공정한 원칙과 사실에 대한 과학적 분석·탐구, 일관된 법리와 충실한 논증 등을 특징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사건이 쏟아지면서 그 여파로 법원이 흔들릴수록, 법원의 문법과 지향점은 무엇인지, 우리가 이에 충실했는지, 제대로 전달했는지, 성찰해야 한다”며 “이것이 충분하지 못하면 법원이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사법 3법’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이 대법관은 “법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입법과정이 충격적이고 안타깝다”면서도 “이러한 입법의 배경에는 재판에 대한 국민들의 오래된 불만, 불신이 깔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사법부가 권위적인 모습을 내려놓고 더욱 전문적이고 투명하며 설득력 있는 재판을 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특히 재판소원과 법왜곡죄에 대해서는 법원이나 법관의 업무 수행에 상당한 제한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법관 증원에 대해서는 “대법원의 구조와 기능, 전체 법원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며 새로운 제도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법관은 6년간 경험한 대법원의 가장 큰 문제로 ‘사건의 홍수’를 꼽았다. 과도한 사건 부담으로 대법원이 최고법원으로서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대법원이 법적 쟁점에 대한 기준을 신속히 제시하는 본래 기능을 회복하려면 사실심 보완 기능에서 벗어나고 고등법원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대법관은 2020년 9월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 제청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돼 이날 6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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