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반등에 연금고갈 해소? 기대 금물"⋯'韓 저출산' 석학들의 경고

입력 2026-09-0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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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정 양립 '그림의 떡'… "출산 포기하는 무자녀 딩크족 급증 직시해야"
대학서열-생애소득 직결된 사교육도 도마…"단순 입시개편으론 해결 불가"
"출산율 반등해도 2060년에야 납세인구 유입"…수급 연령 상향 등 제시

▲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BOK-CEPR-OECD 공동 컨퍼런스에서 패널 토론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셀라하틴 임로호롤루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 염민철 버지니아 커먼웰스대 교수, 황지수 서울대 교수, 필리즈 운살 OECD 정책 및 연구 담당 부국장. (배근미 기자 athena3507@)
▲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BOK-CEPR-OECD 공동 컨퍼런스에서 패널 토론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셀라하틴 임로호롤루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 염민철 버지니아 커먼웰스대 교수, 황지수 서울대 교수, 필리즈 운살 OECD 정책 및 연구 담당 부국장. (배근미 기자 athena3507@)

한국 경제가 저출생과 초고령화라는 복합 위기 앞 중대 기로에 섰다. 합계출산율이 저점을 딛고 0.9명 안팎으로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이를 구조적인 회복세로 낙관하기에는 이르다는 국내외 석학들의 경고가 나왔다. 여성의 출산과 육아가 경제활동 발목을 잡는 '차일드 페널티(Child Penalty)'와 자녀의 명문대 진학에 쏠린 소모적 경쟁, 고령화 심화에 따른 연금 고갈 이슈 등이 한국 경제를 복합적으로 옥죄고 있다는 진단이다.

"출산율 반등은 템포 효과일 뿐…'차일드 페널티'가 딩크족 양산"

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BOK-CEPR-OECD 공동 컨퍼런스에서 2세션 토론 패널로 참석한 황지수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나타난 합계출산율의 미세한 반등은 팬데믹 기간 미뤄졌던 혼인이 2023~2024년에 집중되고 이후 첫 아이 출산으로 이어진 '템포 효과(tempo effect)'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젊은 층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태도가 근본적으로 돌아섰다고 단정하기는 이르고 최소 수년간의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낙관적 해석을 경계했다.

황 교수는 특히 한국 내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이 오르고 성별 임금 격차가 좁혀지더라도 저출생 기조는 꺾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육아휴직 제도는 주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등 양질의 일자리에 편중돼 있다"며 "아이를 낳으면 경력과 소득에 막대한 타격을 입는 현실 속에서 결혼을 하더라도 출산이라는 문턱 자체를 넘지 않는 '무자녀 딩크족'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한국 특유의 과열된 사교육 시장도 한국 내 출산 기피의 핵심 뇌관으로 지목됐다. 대입 결과가 향후 노동 시장의 성과와 생애 소득으로 직결되는 연결고리가 워낙 견고하다 보니, 부모가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과잉 투자에 나서는 등 모두가 경쟁에 뛰어들어 결국 아무런 격차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김성은 세종대 교수 등과 공동집필한 '지위 경쟁, 집중 양육 그리고 한국의 저출산' 논문을 발표한 염민철 미국 버지니아커먼웰스대 교수는 "한국 가정의 사교육 투자는 개별 가구 입장에서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사회 전반적으로는 자원을 낭비하는 소모전(rat race)이자 군비 경쟁"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청년층 설문조사 등에서 출산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로 '극심한 입시 지옥과 고통을 자녀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응답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양 박사는 대입 수능 비중 축소나 시험 분산 등 기술적 입시 개편안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선을 드러냈다. 그는 "사회 전반에 '상대평가'에 대한 집착과 서열화 구조가 남아 있는 한 수능 비중을 줄여도 내신 경쟁으로 스트레스가 전이될 뿐"이라며 "사교육 시장에 대한 누진적 과세 도입이나 독일처럼 기술·직업 경로를 통해 재정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다양한 노동 시장 경로를 마련하는 등 근본적인 구조 개혁 없이는 이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연금절벽 '카운트다운'⋯"출산율 반등으론 해결 못해, 지렛대 총동원해야"

특히 이날 언급된 가장 뼈아픈 대목으로는 우리나라 인구 구조 변화와 재정 충격에 대한 지적이 꼽혔다. 한국과 같이 고령화 속도가 유례없이 빠른 경제권에서는 출산율이 기적적으로 회복되더라도 당면한 20~30년간의 재정 위기를 방어할 수 없다는 경고가 이어졌다.

셀라하틴 임로호롤루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유엔 인구 추계 저위 시나리오(장기 출산율 0.8명 가정)를 적용할 경우 21세기 후반 한국의 노인부양비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한다"고 짚었다. 그는 특히 "설령 출산율이 반등하더라도 이들이 노동 시장에 진입해 세금을 내고 은퇴 세대를 부양하기까지는 2060년까지 기다려야 한다"면서 "공적연금 고갈 위기를 출산율 반등만으로 해결하겠다는 기대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에 따른 해법으로 가용한 정책 수단을 최대한 동원하는 '패키지 개혁' 필요성이 제시됐다. 구체적으로는 △소비세 중심의 세제 개편을 통한 연금 개혁 이행 비용 조달 △정년 및 연금 수급 개시 연령 상향 △근로 소득 연계 감액 제도(암묵적 세금) 폐지 등을 촉구했다. 특히 일본이 2004년 도입한 '거시경제 슬라이드(출산율·수명 변화에 따라 연금 수급액을 자동 조정)'와 소득대체율 인하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급격한 생산가능인구 감소 충격을 완화할 카드로는 인공지능(AI) 혁신과 반도체 설비 투자를 중심으로 한 '자본 심화(capital deepening)'가 제시됐다.

패널들은 "저출생과 고령화 대응은 단 하나의 묘책으로 풀 수 없는 복합 방정식"이라며 "재정 건전성 확보와 출산율 제고, 불평등 완화라는 다중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교육·연금을 아우르는 전면적인 사회적 대타협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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