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리스크를 창업자 1인에 전가…벤처투자 원칙 실종 지적

사업 실패의 위험을 투자자와 회사가 함께 분담해야 한다는 벤처투자의 기본 원칙이 무색하게, 계약서 속 특약 조항을 통해 창업자 개인이 거액의 채무를 떠안는 사례가 잇따른다. 직접적인 연대책임은 사라지는 추세지만 '이해관계인' 조항이나 주식매수청구권(풋옵션) 등 다른 형태의 계약상 의무를 통해 투자자가 창업자 개인에게 투자금 회수 위험을 전가하는 구조다.
25일 벤처투자 및 법조계에 따르면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기업 OGQ의 신철호 대표는 최근 대법원에서 투자사에 원금과 연체이자를 포함해 약 120억원을 지급하라는 확정 판결을 받았다. 2021년 게티이미지코리아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9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 지 수년 만에 1·2·3심 모두 패소하며 개인 채무가 최종 확정됐다.
비극의 발단은 당시 체결된 투자계약서 속 조항이었다. 투자계약에는 인수가 무산될 경우 '투자대상기업 또는 이해관계인'이 투자금을 상환하도록 하는 조항이 담겼다. 이후 인수합병(M&A)이 최종 결렬되자 문제가 터졌다. 회사가 투자금을 일반 채무처럼 곧바로 반환할 수도 없었다. 납입된 자본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자기주식 취득 등 상법상 절차와 요건을 충족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투자사는 계약서상 특약을 근거로 신 대표 개인에게 직접 주식매수대금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1심부터 대법원까지 일관되게 투자사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해당 약정을 '회사의 채무를 대표가 대신 갚는 연대책임'이 아니라, '이해관계인 본인이 직접 이행하기로 합의한 독립된 계약상 채무'로 판단했다. M&A 무산이라는 사업적 리스크를 대표 개인이 최종 부담하기로 서명한 이상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벤처투자업계에서는 이처럼 회사의 사업 실패에 따른 반환 책임을 ‘이해관계인’ 개인에게 직접 부담시키는 계약을 사실상 연대책임을 우회한 구조로 보는 시각이 있다. 현행 벤처투자 관련 규정은 벤처투자회사·벤처투자조합 등이 피투자기업의 의무를 제3자인 창업자 등에게 연대해 부담시키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풋옵션이나 별도의 손해배상·금전지급의무를 이해관계인 개인에게 부과하는 방식으로 법망을 우회하는 계약이 관행처럼 횡행해 왔다. 사실상 창업자 개인의 자산으로 원금과 수익률을 보전 받으려는 장치인 셈이다.
실제 유사한 분쟁은 다른 스타트업에서도 발생했다. 3D 공간데이터 플랫폼 기업 어반베이스는 2017년 신한캐피탈로부터 5억원을 투자받았지만, 회사가 어려워진 뒤 투자금 반환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했다. 신한캐피탈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 뒤 회사가 이를 매입하지 못하자 투자계약에 포함된 '이해관계인이 회사와 연대해 책임을 부담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하진우 대표에게 직접 상환을 요구했다. 1·2심에 이어 대법원도 신한캐피탈의 손을 들어주면서 하 대표가 원금 5억원과 이자를 합쳐 약 13억원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확정됐다.
비디오커머스 기업 블랭크코퍼레이션에서도 풋옵션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했다. 블랭크코퍼레이션은 2019년 추진하던 IPO가 중단된 이후 투자사와 최대주주인 남대광 대표 간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당시 투자사 측은 남 대표가 투자계약상 요건을 충족한 풋옵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 전 단계에서 투자를 유치하면서 창업자에 조건부 풋옵션 계약을 요구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사업 실패의 위험을 창업자 1인에게 전가해 개인에게 거액의 채무를 부담시키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혁신 스타트업의 재도전을 원천 차단하고 생태계 전반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지분투자는 고수익을 기대하는 대신 사업 실패에 따른 원금 손실 위험을 투자자가 감수하는 것이 근본적인 룰"이라며 "외형상 풋옵션이나 개별 약정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창업자 개인에게 연대책임을 세우는 관행은 시장에서 반드시 퇴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