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토론 끝에, 토론을 줄이다

입력 2026-08-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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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 개편안과 공수처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순간 20대 국회는 없다.”

2019년 4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말이다. 협상은 없다는 선언이었다. 국회는 몸싸움과 고발전으로 얼룩졌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여야는 여덟 달을 협상했다. 연동형 비례대표 75석이던 선거법 원안은 연동률 상한을 둔 수정안으로 바뀌어 통과됐다. 공수처법도 두 개의 안이 절충을 거쳤다. 보장된 330일을 다 쓴 법안은 없었지만 법은 그 안에서 바뀌었다.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은 그 330일을 90일로 줄였다. 상임위 심사 180일은 60일로, 법사위 90일은 30일로 준다. 본회의에 부의되면 첫 회의에 곧바로 상정된다. 최장 330일이던 처리 기간이 90일 안팎으로 짧아진다. 지난달 국민의힘은 이 법안에 필리버스터로 맞섰다. 여당은 회기를 단축해 무제한 토론을 자정에 끝냈다. 토론은 표결 전에 끊겼고, 그렇게 통과된 법은 토론에 쓸 330일을 줄이는 내용이다.

여당에도 명분은 있다. 천준호 민주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는 "일반 법안 처리에 평균 310일이 걸리는데 패스트트랙 법안은 330일이 걸려 효용성을 상실했다"고 전했다. 22대 국회 필리버스터는 34건으로 역대 최다다. 지연 수단이 남용되니 지연되는 날들을 걷어내겠다는 논리다.

다만 330일은 지연이 아니라 협상의 조건이었다, 2019년 선거법이 원안 그대로 표결됐다면 지금의 선거제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90일 안에 그런 수정이 가능했을지는 미지수다. 운영위 표결에서 반대한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은 "빠른 입법보다 중요한 건 바른 입법"이라고 말했다.

이 규칙을 불편해한 쪽은 늘 당시 다수당이었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은 몸싸움 국회를 끝내자며 여야가 합의해 만들었다. 법을 주도한 새누리당은 시행 이듬해 다수당 발목잡기라며 위헌 심판을 청구했다. 14년이 지나 이번엔 다수당이 된 민주당이 330일을 줄였다. 같은 규칙이 소수에게는 숙의 장치였고 다수에게는 족쇄였던 셈이다.

한 정치학자는 기자에게 "법을 한 정당만이 만들면 그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시민은 그 법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치적 상대편이 절차적으로 동의해야 법의 정당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절차가 빨라진다고 그 동의까지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회는 없다'던 2019년의 선언은 결국 협상 앞에서 무색해졌다. 등을 돌린 여야를 다시 협상장에 앉힌 것이 330일이라는 조건이었다. 이번에 줄어든 것이 바로 조건이다. 90일로 감긴 시계는 여야 모두에게 똑같이 흐른다. 그 시계에 쫓길 당이 향후 어느 쪽일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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