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보유국 인정 없인 만날 유인 없어…회담 성과도 희박”

미국 정부에서 약 20년간 북한 정보 수집·분석을 담당한 레이철 민영 리 스팀슨센터 한국프로그램·38노스 선임연구원은 19일 본지와의 단독 서면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SNS 게시물과 최근 한미연합훈련 축소 등 지난 며칠간의 일들은 북한이 과거보다 훨씬 큰 지렛대를 갖고 있다는 평양의 판단을 거의 확실하게 강화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리 연구원은 “김 위원장의 협상력은 2019년 6월 트럼프 대통령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보다 이미 천문학적으로 커졌다”고 짚었다. 그 배경으로는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와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꼽았다. 북·러 밀착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체제가 더욱 약화했고 중국과의 관계까지 개선될 조짐을 보이면서 북한이 과거보다 훨씬 큰 외교적 운신 공간을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달라진 위상을 고려하면 김 위원장이 당장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유인은 거의 없다는 게 리 연구원의 판단이다. 그는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겠다고 보장할 때만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수도 있다”며 “법적 인정이 아닌 정치적 인정만으로도 북한은 의미 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일례로 북한의 일방적인 비핵화 없이도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질 수 있고 북한에 대한 제재와 고립의 정치적 근거가 약화하며 북한의 국제적 위상이 한층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최근 대화 재개의 문턱을 한층 높인 것으로 분석됐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미국이 비핵화 요구를 포기하고 북한의 핵 보유 현실을 인정한다면 “미국과 마주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2월 노동당 제9차 대회에서는 미국이 북한 헌법에 명시된 현재의 국가 지위를 존중하고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한다면 “미국과 잘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표현이 등장했다. 여기서 ‘현재의 국가 지위’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가리킨다는 게 리 연구원의 해석이다.
리 연구원은 이에 대해 “‘잘 지내다’는 표현은 대화의 의미가 강한 ‘마주하다’보다 덜 구체적”이라며 “조건도 핵보유국 지위 인정에 ‘적대정책’ 철회까지 추가되면서 더욱 까다로워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는 김 위원장의 커진 자신감과 북한을 세계무대의 주요 플레이어로 인식하는 시각, 갈수록 험악해지는 지정학적 환경에 대한 판단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이 미국에서 얻어내려는 최우선 목표 역시 제재 완화나 한미연합훈련 중단보다 핵보유국 지위 인정에 가깝다고 봤다. 리 연구원은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정치적으로라도 인정한다면 관계 정상화와 국제적 정당성 확보 등의 문이 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미국이 한미동맹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북한이 원하는 것을 내놓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경우 한미동맹을 훼손하고 일본의 핵무장을 부추기는 것은 물론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까지 더욱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김 위원장도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기대를 걸지 않을 것”이라며 “또 한 번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하더라도 가시적인 성과를 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