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농협 이전, 갈 때 가더라도 농민에게는 물어야지

입력 2026-08-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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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길 정치경제부 차장
▲노승길 정치경제부 차장
농협중앙회의 주소를 놓고 이상한 경주가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전 대상 기관도, 지역도 결정한 적이 없다는데 지방자치단체들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국회에는 전북으로 옮기자는 법안과 서울 규정을 없애고 정관으로 정하게 하자는 법안 등이 쌓였다. 농협 노동자들은 반대 집회를 열었고 농업인단체들은 농업인과 조합원을 빼놓은 논의를 중단하라고 요구한다. 가장 먼저 답했어야 할 질문이 뒤로 밀렸다. 농협중앙회의 주소는 대체 누가 정해야 하는가.

농협중앙회는 공공기관운영법상 공공기관이 아니다. 정부가 올해 지정한 공공기관 342개 명단에도 없다. 공공기관운영법은 구성원 간 상호부조와 권익 향상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없도록 한다. 농협법상 중앙회의 회원은 지역·품목조합과 품목조합연합회다. 농협 조직은 현재 농축협 1106곳과 조합원 204만명을 기반으로 한다. 일반 공공기관과 농업인이 만든 협동조합은 법적 성격과 의사결정 구조부터 다르다. 공공기관 이전의 틀을 농협에 그대로 들이대기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고 공공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지방 이전론을 지역 이기주의로 치부할 일도 아니다. 수도권에 집중된 일자리와 의사결정 기능을 지역으로 보내자는 요구는 정당하다. 전북은 농촌진흥청과 농업과학기관, 광주·전남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와 한국농어촌공사와의 연계를 내세운다. 농업기관을 모아 시너지를 내고 농협을 현장에 더 가까이 두자는 주장에도 귀 기울일 대목이 있다.

문제는 농협 이전을 공공기관 사옥 하나 옮기는 일처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농협 조직은 중앙회뿐 아니라 경제지주와 금융지주, 은행·보험·증권 등으로 얽혀 있다. 중앙회만 옮길 것인지, 경제사업과 금융사업까지 포함할 것인지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대상과 기능, 인력이 불분명한 상태에서는 비용도 편익도 계산할 수 없다.

농협 노조는 토지 매입비를 빼고도 이전에 최소 2520억원이 들고, 수도권에 남겨야 할 기능을 제외하면 실제 이동 인력은 460명가량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해당사자의 추계인 만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정부나 독립기관의 객관적인 비용·편익 분석이 먼저 나와야 한다. 비용 부담 주체와 농업인 지원 재원에 미칠 영향, 지역에 생기는 일자리와 투자를 숫자로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개된 정부 차원의 분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비용 못지않게 우려스러운 것은 장소를 고르는 정치가 농협의 주인에게 묻는 절차보다 앞서가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에 발의된 관련 법안 5건 중에는 중앙회 소재지를 전북으로 못 박은 안도 있다. 현행법의 ‘서울’을 ‘전북’으로 바꾸는 것은 주소만 바꿀 뿐, 결정권을 국회에 남겨두는 일이다. 지역마다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주소를 법에 넣기 시작하면 농협은 농업인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지역 유치전의 경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

물론 현행 농협법이 중앙회의 주소를 서울로 고정한 것도 당연한 일은 아니다.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면 법이 서울을 영구적인 자리로 보장할 이유도 없다. 서울 규정을 없애고 소재지를 정관에 맡기는 방향이 더 타당하다. 다만 정관 변경은 중앙회 대의원회 의결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인가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1106개 농축협과 204만 조합원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도록 별도의 의견 수렴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결정 절차와 함께 이전의 성과를 판단할 기준도 분명해야 한다. 지역균형발전의 성과는 사옥 주소가 아니라 지역에 남는 일자리와 투자, 농업인의 소득으로 평가해야 한다. 농협의 경제·유통 기능과 신규 사업을 지역에 우선 배치하고 디지털·교육·연구 기능을 농업 현장과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중앙회 간판만 옮겨 달고 핵심 기능이 수도권에 남는다면 지역도 농업인도 실익을 얻기 어렵다.

서울에 남는 것이 농업인에게 더 이롭다면 그 근거를 내놓아야 한다. 지방으로 옮기는 것이 더 큰 실익을 만든다면 농업인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서울이냐 지방이냐가 아니다. 주소를 정할 권한을 누구에게 돌려주느냐다. 협동조합의 주소를 바꾸려면 먼저 그 주인에게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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