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포항지진' 관리·감독한 에기평·지질연도 배상책임…법원 “안전의무 당연”

입력 2026-08-1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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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기평·지질연 공동불법행위 인정…책임비율 30%
이노지오 23억 배상…사실상 영업중단, 이행 불투명
화재보험협회·에기평·지질연 모두 1심 불복해 항소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CI (사진 제공=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CI (사진 제공=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2017년 포항지진을 촉발한 지열발전 사업의 직접 수행기관뿐 아니라 사업을 관리·감독한 기관에도 피해 배상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안전관리에 관한 명문 규정이 없더라도 국가 연구개발사업 관리기관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업을 감독할 의무가 있다는 취지다.

10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2부(최누림 부장판사)는 지난달 한국화재보험협회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지질연)과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에기평), 이노지오테크놀로지, 포스코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이노지오에 약 2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가운데 약 6억원에 대해서는 에기평과 지질연이 이노지오와 공동으로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화재보험협회는 포항지진으로 대구지검 포항지청, 포항교도소 등 보험에 가입된 국가시설이 파손되자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총 23억여원의 보험금을 지급했다. 이후 보험금을 지급한 만큼 피해기관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신 행사하는 ‘보험자대위’에 따라 이번 소송을 냈다.

법원은 사업을 직접 수행하지 않은 에기평에도 불법행위를 인정해 책임 주체 범위를 넓게 인정했다. 에기평은 산업부로부터 국가 연구개발사업의 관리 업무를 위탁받았고, 지진을 촉발한 수리자극 등 현장 작업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에기평은 재판 과정에서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점검·관리대행 업무에 지진과 같은 위험을 방지하고 안전조치를 취할 구체적인 의무가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안전관리의무에 대한 명문의 규정이 없다고 해서 이러한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 사건 과제로 인해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에 대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도록 관리·감독할 의무도 당연히 포함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리자극 시행 전 산업부 간담회 당시 에기평은 유발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보고받았고, 산업부 관계자는 유발지진 관리방안을 마련하라는 구체적 지침도 내린 상태였다”며 “에기평으로서는 수리자극 실시 전 이 사건 관리방안이 수립되었는지, 이러한 관리방안의 내용은 적절한지 등을 점검하고 평가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또 에기평이 2017년 4월 15일 규모 3.1 지진이 발생한 뒤에도 지진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은 채 과제 수행기간을 연장한 점도 과실로 인정됐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CI (사진 제공=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CI (사진 제공=한국지질자원연구원)

법원은 지진 관측·분석과 안전관리방안 수립을 맡은 지질연에도 책임을 물었다. 재판부는 지질연 등이 규모 2.2 지진이 자체 기준상 ‘적색단계’에 해당했는데도 관계기관에 알리지 않고 경보 기준을 완화했고, 이후 규모 3.1 지진이 발생한 뒤에도 감독 당국의 승인 없이 수리자극을 재개한 점 등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에기평과 지질연을 공동불법행위자로 보고 포항지진으로 발생한 재산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자연적으로 축적된 지구조 응력의 영향 등을 고려해 두 기관의 책임을 피해액의 30%로 제한했다.

화재보험협회는 에기평과 지질연의 책임을 30%로 제한한 데 불복해 항소했다. 협회 측은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한 후 수리자극 중단이 있었다면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질연과 에기평의 책임 비율은 30%보다 높아야 한다”고 밝혔다.

에기평과 지질연 역시 항소한 상태다. 에기평 관계자는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별도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지질연 관계자도 “진행 중인 재판에 대해 연구원은 성실히 임하고 있다”라고만 설명했다.

이노지오에는 보험금 전액인 약 23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지만 실제 이행 여부는 불투명하다. 지열발전 사업에서 시추공벽 안정화 설계 등을 맡았던 이노지오는 현재 법인만 유지한 채 사실상 영업활동을 중단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노지오 관계자는 “법인만 유지한 채 영업활동은 전혀 하고 있지 않다”며 “현실적으로 배상액을 감당하거나 항소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라 폐업 절차를 밟으려 한다”고 했다.

포스코에 대한 청구는 기각됐다. 재판부는 포스코가 지진을 촉발한 지중 탐사·개발 업무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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