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혐오표현, 피해는 분명한데 형사처벌은 왜 어려울까? [수사와 재판]

입력 2026-08-08 07:00

기사 듣기
00:00 /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최근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이 광주제일고와의 경기에서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 등의 구호를 외쳐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행동으로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처럼 교육 현장에서는 인종이나 장애, 성별, 외모, 출신 지역 등을 이유로 특정 학생을 비하하는 표현이 장난이나 유행어처럼 사용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의 혐오표현은 어떤 경우 형사처벌이나 학교폭력 조치의 대상이 되는지 허윤 변호사(법무법인 동인)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진=AI 생성)
(사진=AI 생성)

혐오표현은 통상 인종·성별·장애·국적·출신 지역·종교 등을 이유로 개인이나 집단을 열등하다고 낙인찍고 이들을 차별하거나 배제, 적대감을 조장하는 표현을 의미한다. 따라서 역사적 사건에 관한 부적절한 농담이라도 특정 지역 주민이나 피해자 집단을 조롱하고 사회적 편견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사용됐다면 혐오표현으로 평가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혐오표현이 미성숙한 학생의 인격권과 학습권을 침해하는 수준을 넘어 차별과 따돌림의 대상으로 만들고, 나아가 하나의 놀이 문화로 만든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장난이나 유행어처럼 시작된 표현이라도 반복되면 이러한 행위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피해 학생은 지속적으로 소외되고, 주변 학생들은 따라 하면서 차별에 동조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혐오표현은 개별 학생 사이의 문제가 아닌 학교 공동체 전체의 인식과 문화를 왜곡하는 수준에 이를 수 있다.

형사처벌이 학교 현장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수단은 아니다. 학생은 아직 인격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으므로, 잘못된 표현에 대해서는 처벌보다 사과·상담·교육과 같은 회복적 조치가 우선돼야 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형벌체계가 지닌 억제 기능까지 부인할 수는 없다. 일정한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면 학생들에게도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 최소한의 표현 기준을 알려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행법에는 학교에서 이루어진 혐오표현 자체를 일반적으로 처벌하는 독립된 조항이 없다. 혐오표현을 한 학생에게 형사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그 표현이 모욕죄, 명예훼손죄, 협박죄 등 기존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해야 한다. 즉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혐오적이고 부적절한 표현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형사처벌은 구별되는 것이다.

혐오표현과 관련해 가장 먼저 검토되는 범죄는 모욕죄다. 형법상 모욕죄가 성립하려면 불특정 또는 여러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서 특정한 사람을 모욕해야 한다. 여기서 모욕이란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릴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모욕죄가 성립하려면 먼저 표현의 대상이 누구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해당 표현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졌거나 전파될 가능성이 있는 ‘공연성’도 인정돼야 한다. 만약 다수의 학생이 있는 교실에서 특정 학생의 장애나 인종, 외모를 거론하며 모멸적인 별명을 반복적으로 부르거나, 단체대화방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특정 학생을 겨냥한 비하 표현을 게시한 경우에는 모욕죄가 문제 될 수 있다.

반면 특정 학생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을 말한 경우에는 명예훼손죄가 검토된다.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불특정 또는 여러 사람이 알 수 있는 상태에서 특정인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릴 만한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해야 한다. “돈을 훔쳤다”,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것처럼 표현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을 전달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적시한 내용이 거짓이면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문제 되고, 진실한 사실이라도 공연히 이를 알려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다. 결국 구체적인 사실을 전달했다면 명예훼손죄가, 구체적인 사실 없이 욕설이나 경멸적 감정을 드러냈다면 모욕죄가 주로 문제 된다.

문제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혐오표현이 사회적·교육적으로 심각하더라도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로 처벌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두 범죄 모두 원칙적으로 피해자가 특정돼야 하고, 표현이 불특정 또는 여러 사람에게 알려질 수 있는 공연성도 인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다른 학생과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인종이나 장애를 이유로 심한 비하 발언을 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없다면 공연성이 부정돼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 피해 학생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만으로 형법상 공연성 요건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 개인이 아니라 집단 전체를 향한 혐오표현도 처벌이 쉽지 않다. 장애인, 외국인 또는 특정 지역 출신자 전체를 열등한 존재로 묘사하거나 조롱하는 표현은 차별과 적대감을 확산시킬 위험이 크다. 그러나 그 집단의 범위가 넓어 개별 구성원이 피해자로 특정되지 않는다면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를 적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공격 대상이 넓고 사회적 파급력이 클수록 오히려 형사처벌은 어려워지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배재고 야구부 사건에서 문제 된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 등의 구호도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해당 표현이 5·18민주화운동과 광주 지역을 조롱하려는 취지에 해당해도 그 자체만으로 특정 피해자를 직접 지목했다고 보기 어렵다면 형법의 적용은 어려울 수 있다.

학생의 연령에 따른 제한도 있다. 만 14세 미만 학생은 형법상 형사미성년자이므로 모욕죄나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동을 했더라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다만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학생은 소년보호사건으로 처리돼 보호관찰, 수강명령, 사회봉사명령 등의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다.

허윤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학교에서의 혐오표현은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로 처벌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형사처벌이 어려운 경우에도 학교폭력 절차와 교육적 조치를 통해 혐오적 표현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움]

허윤 변호사는 법무법인 동인 금융팀, 수사대응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또 방위사업청 옴부즈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사, 서울특별시의회 입법법률고문, 언론중재위원회 자문변호사, 기획재정부 사무처 고문변호사 등으로 활동했습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22일 만에 다시 문 연 홈플러스…정상화 바쁜데 재고 없어 ‘발동동’[가보니]
  • 입추매직 '불발', 처서매직은 올까요? [해시태그]
  • 콘서트 갈 때 응원봉만?⋯'최애' 위한 필수품 등장이오! [솔드아웃]
  • 서울시, 정부에 정비사업 규제 완화 '건의'⋯국토부 "협의 중" 입장만 [종합]
  • 서울 40도 찍더니 하남 40.8도·광양 40.2도…전국 '펄펄'
  • 넥스트레이드, 12일부터 프리마켓 상·하한가 주문 한시 금지
  • 9월 입주 디에이치방배 잔금대출 풀린다…은행권 3000억 공급
  • 단독 논란의 'Busan is Good'…8억 도시브랜드, 용산 대통령실 CI 업체가 수행
  • 오늘의 상승종목

  • 08.07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1,255,000
    • -0.07%
    • 이더리움
    • 2,695,000
    • -0.3%
    • 비트코인 캐시
    • 302,700
    • +0.33%
    • 리플
    • 1,438
    • -2.11%
    • 솔라나
    • 103,600
    • +0.48%
    • 에이다
    • 283
    • -0.7%
    • 트론
    • 461
    • -0.65%
    • 스텔라루멘
    • 226
    • -1.74%
    • 비트코인에스브이
    • 18,810
    • +0%
    • 체인링크
    • 11,530
    • -0.77%
    • 샌드박스
    • 58.08
    • -0.55%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