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RARE ] VOL. 12
이 집은 대체 얼마일까:
슈퍼리치들의 주거지
"천외천(天外天). 하늘 밖의 하늘이 있다."
부자 중에서도 '슈퍼리치'라 불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명품관의 오픈런 줄에는 그들이 없습니다. 세상의 0.0001%로 살아가는 그들, '천외천'의 삶은 우리의 상식 밖 궤도에서 움직입니다.
로고가 없는 3000만원짜리 코트, 대중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1억원의 침대, 그리고 지도에서 지워진 리조트. 남들이 알아봐 주길 바라는 '과시'가 아니라, 남들은 결코 알 수 없는 '단절'을 사는 그들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요.
이투데이 [THE RARE]는 일반인들은 접하기도 힘든,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 훔쳐보고 싶은 견고한 성벽 안쪽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로고가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무엇인지, 그들이 지갑을 여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자본주의 최정점에 선 그들의 소비와 취향, 그 속에 숨겨진 부의 트렌드를 들여다 봅니다.
상위 0.0001%가 사는 세상의 문을 열다
VOL. 12 주거지

27층짜리 호텔에 투숙객이 '단 한 가족'뿐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인도 뭄바이 시내 한복판, 173m 높이의 건물 하나가 서 있습니다.
27개 층, 헬기 착륙장 3개, 지하 6개 층을 통째로 채운 주차장, 그리고 규모만 500㎡가 넘는 헬스ㆍ스파 층까지. 이 건물을 굴리기 위해 매일 약 600명의 인력이 출근합니다. 웬만한 5성급 호텔을 넘는 수준이죠.
그런데 이 건물의 정문에는 호텔 이름도, 회사 이름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사람 이름 하나가 적혀 있을 뿐입니다. 인도 최대 재벌 무케시 암바니, 그리고 그의 가족 다섯 명. 이 건물은 27층짜리 '자가 주택'입니다. 건축비만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 이름은 '안틸리아' — 대서양에 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섬에서 따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암바니 가족이 딱히 유별난 축에 속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런던 켄싱턴 팰리스 가든스, 일명 '억만장자 거리'에서는 저택 한 채가 2억달러(약 2830억원)를 훌쩍 넘는 가격에 조용히 거래됩니다.
프랑스 리비에라의 '빌라 레오폴다'는 한때 7억5000만달러(약 1조650억원)에 팔릴 뻔했다가, 매수자였던 한 러시아 재벌이 5000만유로(약 710억원)의 계약금을 그냥 포기하고 발을 뺀 일화로 유명합니다. 웬만한 회사 하나를 세우고도 남을 돈을 계약금으로 날리고도,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다음 매물을 보러 갔습니다.
억만장자들이 소유한 가장 비싼 저택 상위 10곳을 세어보면, 단 한 곳도 1억달러(약 1400억원) 밑으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상상조차 안 되는 이 숫자가, 이 세계에서는 그저 '입장권' 수준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상식 밖의 스케일
부동산 컨설팅 업체 '럭셔리 포르폴리오 인터내셔널'의 로리 오하건 대표는 초고자산가들의 부동산을 두고 "이 사람들은 집을 산다기보다, 왕국을 짓는다"라고 표현합니다.
실제로 이들 중 상당 수는 방이 몇 개인지, 평수가 얼마인지를 묻지 않습니다.
우리가 '내 집'이라는 단수(單數)의 안식처를 꿈꾸는 동안, 그들은 애초에 '집 한 채'라는 개념 자체를 넘어섭니다.
그렇다면 이 '집이 곧 왕국'인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얼마를 들여 살고 있을까요.
저택 하나를 밝히려고 통째로 지어버린 개인 발전소부터,
아무도 안 쓰는 별장에서 발견된 페라리까지.
이번 호에서는 슈퍼리치들만이 공유하는 '천외천(天外天)'의 주거 방식을 들여다봅니다.
STEP 01 . SCALE
집이 아닌 왕국

미국 산업재벌 아이라 레너트가 뉴욕 햄프턴에 지은 저택 '포 페어필드 폰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도시입니다. 라이프비욘드스포츠에 따르면 이 저택은 침실 29개, 욕실 39개에 수영장이 세 개나 딸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집에서 가장 놀라운 시설은 수영장도, 침실도 아닙니다. 일반 전력망으로는 이 정도 규모의 저택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레너트는 부지 안에 자신의 집 하나만을 위한 발전소를 따로 지었습니다. 이웃집 전기를 나눠 쓰느니, 발전소를 통째로 짓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미국 사업가 래리 엘리슨의 접근은 조금 다릅니다. 부동산 정보 매체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우드사이드에 그가 지은 집은 일본 무로마치 시대 궁전을 본떠 만든 9만 평 규모의 저택인데, 완공까지 무려 9년이 걸렸습니다. 못을 전혀 쓰지 않고 진흙을 발라 마감한 전통 방식의 벽은 진도 7의 지진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됐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인공 호수, 다도(茶道) 별채, 목욕 전용 별채, 잉어 연못까지—집이 아니라 하나의 작은 마을입니다. 그런데 정작 엘리슨은 이 집이 아니라 하와이 라나이섬에 삽니다. 섬 하나를 통째로 사버렸거든요.
마이클 그로스 저 'House of Outrageous Fortune' 中
"이 집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다. 164석의 영화관, 굴뚝 12개, 볼링장 2개, 수영장 3개, 그리고 저택 전용 발전소를 갖추고 있다. 이 규모는 햄프턴 지역 전체의 건축 규제와 전력 소비 관련 법안을 완전히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자기 집 하나 밝히려고 발전소를 따로 지은 사람, 그리고 9년을 들여 완성한 저택보다 섬 하나를 더 좋아하는 사람. 이들에게 집은 사는(live) 곳이라기보다, 사는(buy) 것 그 자체에 가까운지도 모릅니다.
STEP 02 . WEIRD
상식 밖의 주거 생활

미국 사업가 론 버클은 조금 특이한 취미가 있습니다. 유명인이 살던 집만 골라서 사들이는 겁니다. 1973년 건축가 존 로트너가 코미디언 밥 호프를 위해 지은 '팜스프링스 UFO 하우스'를 그는 단돈 130억원(원래 호가 500억원)에 낚아챘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2020년에는 마이클 잭슨의 사유지 '네버랜드 랜치'를 220억원(원래 호가 1100억원)에 사들였습니다. 잭슨이 동물원과 놀이공원을 지었던 바로 그 땅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 "마이클 잭슨의 네버랜드, 80% 할인된 가격에 매입" 보도 中
"억만장자 투자자 론 버클이 한때 마이클 잭슨의 사유지였던 캘리포니아의 '네버랜드 랜치'를 2200만달러에 매입했다. 2015년 첫 매물 출품 당시 요구 가격이었던 1억달러(약 1100억원)에서 무려 80% 가까이 폭락한 금액이다. 버클은 건축학적으로 가치가 높거나 유명인의 역사가 담긴 부동산을 저평가되었을 때 매입하는 대표적인 '부동산 수집가'로 알려져 있다."
이 정도 '수집 취미'는 사실 초호화 주택 세계에서는 평범한 축에 속합니다. 미국 매체 버즈피드가 독자들을 대상으로 "부잣집에서 목격한 가장 충격적인 것"을 조사한 결과, 실화라기엔 믿기 힘든 사연들이 쏟아졌습니다. 한 사용자는 친구 아버지 소유의 '아무도 안 쓰는 별장' 창고에서 페라리 한 대를 발견했다고 썼습니다. "배터리가 방전됐다"는 이유로 친구가 며칠을 스트레스받았는데, 알고 보니 그 차고는 여러 채 중 사람이 살지도, 렌트를 놓지도 않는 예비 저택의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어릴 적 여자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인터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물었더니 "엄마가 집이 너무 커서 소리 질러 부를 수가 없어 설치한 것"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어떤 이는 부잣집 다이닝룸 한가운데 스포츠카 섀시가 그냥 장식품으로 놓여 있었다고 전했고, 어떤 이는 자녀가 다니는 사립 기숙학교에서 한 학부모가 "우리 아이 전속 셰프는 어느 방에서 자나요?"라고 진지하게 물었다는 일화를 전했습니다. 그 학생은 열세 살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슈퍼리치의 집을 관통하는 진짜 특징이 뭔지 감이 옵니다. 크기도, 가격도 아닙니다. "이게 왜 필요하지?"라는 질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필요를 채우기 위해 물건을 사지만, 이들은 필요라는 개념 자체를 새로 만들어냅니다.
STEP 03 . ADDRESS
어디 사느냐, 그것이 재산이다

2021년,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하와이 마우이섬 남서쪽 끝자락에 있는 4헥타르(약 1만2000평) 부지를 사들였습니다. 라이프스타일 전문 매체 럭셔리런치스에 따르면 이 저택은 가장 가까운 도시에서도 19km나 떨어진 외딴 해안가에 있고, 매물 가격은 약 7800만달러(약 1000억원)였습니다. 주변엔 이웃도, 관광객도 없습니다. 그가 원한 건 근사한 풍경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는 위치'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같은 해, 베이조스는 정반대의 선택도 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의 상징적인 '워너 에스테이트'를 1억6500만달러(약 2300억원)에 사들인 겁니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옛 저택이 몰려 있는, 그야말로 '남들이 다 아는' 동네입니다.
슈퍼리치에게 주소는 이렇게 두 가지 상반된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하나는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누구나 알아보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 두 극단 사이, 유독 좁은 땅에 부가 몰리는 예외적인 나라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모나코입니다. 국토 면적이 여의도의 절반도 안 되는 이 작은 공국은 전 세계에서 평당 부동산 가격이 가장 비싼 곳으로 꼽힙니다. 그 상징이 '오데옹 타워 펜트하우스'입니다. 170미터 높이의 건물 꼭대기에 자리한 이 집은 5개 층, 3300㎡(약 1000평) 규모에 가격은 3억3000만달러(약 4600억원)입니다. 전용 워터슬라이드가 옥상 수영장에서 한 층 아래 실내 풀장까지 이어집니다. 이곳의 세금 제도가 유리하다는 실용적 이유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좁은 땅에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재력의 증명이기 때문입니다.
포브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워터슬라이드가 딸린 초호화 펜트하우스" 보도 中
"모나코의 170m 높이 오데옹 타워 최고층에 위치한 '스카이 펜트하우스'가 시장에 나왔다. 약 3300㎡의 5개 층 구조로, 추정 가치는 3억3000만달러 이상이다. 댄스 플로어, 전용 야외 야경 수영장, 그리고 옥상 테라스에서 아래층 수영장으로 바로 연결되는 전용 워터슬라이드를 갖추고 있다."
런던도 다르지 않습니다. 켄싱턴 팰리스 가든스는 흔히 '억만장자 거리'로 불리는데, 이곳엔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인도 철강 재벌 락슈미 미탈이 나란히 이웃해 삽니다. 한 개발업자는 이 거리의 저택 두 채를 아예 통째로 합쳐 하나의 초대형 저택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거리에서 중요한 건 건축양식이 아니라 '내 옆집에 누가 사는가'입니다. 슈퍼리치에게 좋은 집이란 좋은 자재로 지은 집이 아니라, 좋은 이웃과 담장을 맞댄 집인 셈입니다.
STEP 04 . MONEY
효율적인 레버리지

억만장자들이 이런 집을 살 때 정작 '현금'을 다 지불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한 싱가포르 고객은 런던에 700만파운드(약 130억원)짜리 집을 사면서 계약금을 단 한 푼도 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보유 중인 주식 등 기존 자산을 담보로 잡고, 연 1%라는 파격적인 금리로 대출을 받았습니다.
초고자산가 전용 대출은 대부분 이자만 갚는 방식이며, 원금은 집을 팔거나 자녀에게 상속될 때 다음 세대가 비슷한 대출로 승계하는 식으로 처리됩니다. 이렇게 아낀 현금은 세율이 더 유리한 곳으로 옮겨 다니며 굴려집니다.
이런 대출을 성사시키는 은행원들은 부자들이 모이는 자리를 놓치지 않습니다. 모나코 요트쇼, 제네바의 비즈니스 항공 박람회, 다보스 세계경제포럼까지 — 슈퍼요트나 전용기를 구경하러 온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해 대출 상담을 건넵니다. 한 모기지 브로커는 "모나코 요트쇼에서 로고가 박힌 선글라스 클리너 천을 나눠준 것만으로 5억파운드(약 9500억원) 규모의 잠재 고객을 확보했다"고 말합니다.
집을 '완전히 소유'하기보다 '영리하게 빌려서 쓰는' 이 방식은, 자산이 커질수록 오히려 자기 돈을 쓰지 않는 쪽이 더 합리적이라는 슈퍼리치들만의 계산법을 보여줍니다.
EPILOGUE
사람은 하나의 소파에만 앉을 수 있다

앞서 잠깐 언급한, 열세 살 학생과 '셰프 딸린 기숙사 방'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명문 기숙학교에 갓 입학한 그 학생의 부모는 아이의 방을 둘러보다가 진심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사감에게 정말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방이 하나뿐인가요? 저희 아이의 전속 셰프는 어디서 지내죠?"
이 일화가 우스꽝스럽게 들리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에게 '내 방 하나'는 이미 특별한 것인데, 그들에게는 그 방조차 '기본값'이 채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 모든 화려함을 관통하는 문장은 따로 있습니다. 123개의 방이 있는 저택 '더 매너(The Manor)'를 소유했던 샘 파머는, 럭셔리 부동산 매체 맨션글로벌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늘 이렇게 생각했어요. 집이 아무리 커도, 결국 사람은 소파 하나에만 앉을 수 있고, TV 한 대만 볼 수 있다고요."
오늘 밤 당신이 몸을 누이는 곳은 어디인가요. 우리는 몇 달을 발품 팔아 겨우 방 한 칸을 구하고, 그 작은 공간에 스탠드 하나, 좋아하는 이불 하나를 들여놓으며 비로소 안도합니다. 그 방은 누군가에게는 너무 작을지 몰라도, 하루를 버텨낸 우리에게는 가장 편안한 공간이 됩니다.
반대로 슈퍼리치의 집에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방이 수십, 수백 개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밤이 되면 결국 단 하나의 침대에서 잠이 듭니다.
집의 크기가 안락함의 크기를 결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부러워했던 것은 넓은 저택이 아니라, 하루를 편안히 마무리할 수 있는 공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저마다의 방 한 칸, 저마다의 안식처를 위해 애쓴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 ETODAY.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