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콩물 한 잔

입력 2026-07-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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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뇌성마비 환자의 집을 방문했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였다고 한다. 뇌성마비는 대근육 운동기능 상태에 따라 중등도를 평가하는데 그는 태어나서 한 번도 앉아보지도 걸어보지도 못한 가장 심한 단계의 뇌성마비였다. 손은 비틀려있었고 다리는 희한하게 꺾여 그대로 굳어버렸다. 지능은 2~3세 정도로 보호자와 낯선 사람을 구분하는 정도의 최중증 지능 장애를 동반하고 있었다.

출생 당시 의사는 아이가 20년을 못 넘길 거라고 했다고 한다. 20년이라는 소리를 듣고 부모는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아이가 살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돌보리라. 그런데 20년을 못 넘긴다는 아이가 40세를 넘기더니 40대 중반이 되었다. 20년까지는 부모가 힘이 있어 돌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20년이 더 흐르자 본인들도 노쇠해져 언제까지 아들을 돌볼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래서 아들의 건강을 정기적으로 관리해 줄 의사를 찾다 우리 의원과 연락이 닿아 방문 진료를 나갔다.

혈액검사에서 심한 빈혈과 영양결핍이 나왔다. 서둘러 빈혈약을 처방하고 영양 교육을 했다. 앉지도 못해 평생 누워서 밥을 먹어야 했으니 제대로 된 식사를 했을 리 만무했다. 거기다 치아 상태는 심각했다. 내가 알 수 없고 평가할 수도 없는 치과 문제가 산적해 있어서 제대로 씹지도 못할 것 같았다.

나는 동네의원이 환자들이 방문할 수 있는 가장 낮은 문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문턱에조차 올 수 없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방문 진료를 하면서 알게 됐다. 태어나서 한 번도 앉아보지도 못한 이들은 자기 집 방 문턱도 넘을 수 없었다. 환자만 집 밖을 못 나간 게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 때문에 40여 년을 여행 한 번 안 갔다고 한다. 누구에게 좀 맡기고 외출도 하고 여행도 가지 그러셨냐고 했는데 남에게 내 아들 안 맡기겠다고 했다.

고집일까 싶었는데 어머니 얼굴에서 그런 뒤틀어짐은 보이지 않았다. 이 아이와 평생을 함께 사는 것이 본인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어머니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집을 나서기 전 시원한 콩물을 얻어 마셨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콩물은 처음이었다. 조석현 누가광명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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