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각의 유희라는 의미에서 이 도락의 범위를 조금 더 넓혀 볼 수도 있겠다. 일과를 마친 뒤 잠자리에 드는 것과는 별개로, 한가한 오후의 낮잠(午睡)이나 여행 중 피곤한 몸을 쉬려 어딘가에 기대어 느긋하게 조는 것도 도락이 아닐까.
요즘에는 음식뿐 아니라 이미지와 소리도 넘쳐난다. 좋은 전시를 보고, 마음에 드는 음악을 듣는 일도 도락이라 할 수 있다. 눈으로 즐기고 귀로 즐기는 시대다. 그렇다면 낮잠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이를 ‘면도락가(眠道樂家)’라고 하자. 면도락가는 생산성이나 부가가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가장 순수한 도락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진주의 촉석루와 런던의 브리티시 박물관 홀에서 잠깐 잠든 적도 있다.
주말이나 휴가 때면 낮잠을 즐기는 편이다. 소파에서 TV를 보다가 졸기도 하고, 컴퓨터 앞 의자에 기대 잠들기도 한다.
낯선 곳이라도 주변의 풍광과 공기가 친숙하게 느껴지면 고향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다. 시나브로 졸음이 찾아온다. 이왕이면 햇살 한 뼘이 드는 툇마루쯤이 좋고, 뜰에는 모란이나 봉숭아가 피어 있다면 더욱 좋겠다. 풀 향기가 느껴지고 멀리서 매미소리가 들려온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어린 시절, 방학 때면 찾아가던 고향집의 안채에는 대청마루가 있었다. 누우면 천장이 보이고, 서까래를 따라 시선을 옮기면 한 귀퉁이에 붙어 있는 제비집이 눈에 띈다. 비가 오면 간간이 물방울이 튀고, 볕 좋은 날에는 빨간 고추를 말리기도 했다. 맵싸한 고추 향이 마루 가득히 번졌다. 그늘 깊은 마룻바닥에 등을 붙이고 뒤척이다 보면 실바람과 고추 향에 취해 의식이 가물가물해진다. 슬그머니 잠으로 빠져들다가, 미숫가루를 타 놓았다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비몽사몽에서 깨어난다.
그때의 습성이 지금의 낮잠으로 돌아온 모양이다. 요즘에는 밤이든 낮이든 잠에 빠지는 것은 게으름의 표상으로 여겨진다. 이른 아침이면 어김없이 깨어나야 하고 늘어난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이런 세상에서 벌건 대낮에 마루에 등을 붙인 채 뭉그적대는 모습은 염치없어 보인다. 그러나 삶은 생산과 효율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빡빡한 일상에서도 틈틈이 느슨해지는 순간도 있어야 살맛이 난다.
스마트시계는 잠든 시간과 뒤척인 횟수를 기록하고, 수면의 질을 점수로 매긴다. 우리는 잠조차 관리의 대상으로 삼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아무런 셈법도 없이 스르르 빠져드는 낮잠 하나쯤은 남겨둘 필요도 있겠다.
밤잠은 육신의 피로를 덜어내고 회복시키는 보약과도 같다. 그러나 낮잠은 치료나 회복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의식을 느슨하게 풀어놓은 채, 잠과 깨어 있음 사이 어딘가에 머무는 짧은 완충지대, 또는 명상에 가까운 상태일 것이다.
밤잠이 밥이라면, 낮잠은 간식일 게다. 그런데 낮잠에서 깨어나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잠깐 헷갈릴 때가 있다. 여행지인지, 내 방인지 분간이 흐려지는 몇 초. 현실과 꿈이 맞닿는 그 짧은 혼란이야말로 낮잠이 주는 가장 달콤한 선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