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올릴 땐 원가 탓, 뒤로는 사주 챙겼다…‘물가 탈세’ 3195억원 추징

입력 2026-07-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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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114곳 조사 마쳐 7698억원 적출…상위 10곳이 추징액 78% 차지
독과점·슈링크플레이션·할당관세 악용까지…가격 인상 뒤 탈세 백태

▲국내 주요 제분사들이 밀가루를 6년간 담합해 판 혐의로 20년 만에 다시 공정거래위원회의 심판을 받게 됐다.공정위는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릴지도 심의한다.  공정위는 CJ제일제당과 대한제분 등 7개 제분사가 2019년 11월∼작년 10월까지 국내 기업간거래(B2B)에서 반복적으로 밀가루 판매 가격 및 물량 배분을 밀약한 혐의를 전원회의에서 심의하기로 했다고 2월 20일 발표했다. 공정위 심판대에 오르는 7개 제분사는 대선제분, 대한제분, 사조동아원, 삼양사, 삼화제분, CJ제일제당, 한탑이다. 사진은 이날 서울 한 대형마트 밀가루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국내 주요 제분사들이 밀가루를 6년간 담합해 판 혐의로 20년 만에 다시 공정거래위원회의 심판을 받게 됐다.공정위는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릴지도 심의한다. 공정위는 CJ제일제당과 대한제분 등 7개 제분사가 2019년 11월∼작년 10월까지 국내 기업간거래(B2B)에서 반복적으로 밀가루 판매 가격 및 물량 배분을 밀약한 혐의를 전원회의에서 심의하기로 했다고 2월 20일 발표했다. 공정위 심판대에 오르는 7개 제분사는 대선제분, 대한제분, 사조동아원, 삼양사, 삼화제분, CJ제일제당, 한탑이다. 사진은 이날 서울 한 대형마트 밀가루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소비자에게는 원재료비 상승 등을 이유로 가격을 올리면서 뒤로는 계열사와 사주 일가에 이익을 빼돌리고 세금까지 줄인 기업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독과점 지위를 이용해 가격을 올리거나 제품 용량을 줄여 사실상 가격을 인상한 뒤 계열사를 부당 지원하고 비용을 부풀려 세 부담을 낮춘 사례도 드러났다.

국세청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물가 관련 탈세 혐의 업체 117곳을 세무조사해 6월까지 조사가 끝난 114곳에서 3195억원을 추징했다고 12일 밝혔다. 적출금액은 7698억원이며 조세범칙 처분은 33건, 이 가운데 고발은 13건이다.

추징액은 일부 업체에 집중됐다. 상위 10개 업체의 추징세액은 2480억원으로 전체의 약 78%를 차지했다. 특히 독과점 등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가진 업체 9곳에서만 1809억원을 추징해 전체의 56.6%에 달했다.

국세청은 조사 대상 업체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같은 시기 공정위와 서울중앙지검의 설탕·밀가루 담합 조사·수사 결과가 발표된 뒤 제당·제분·전분당 업계는 잇따라 가격을 내렸다. 설탕은 CJ제일제당·삼양사, 밀가루는 CJ제일제당·대한제분·삼양사, 전분당은 대상·사조CPK·삼양사·CJ제일제당 등이 가격 인하에 나섰다. 이들 업체가 이번 국세청 세무조사 대상이었거나 추징세액 상위 10개 업체에 포함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개별 조사 대상과 업체별 추징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물가안정 세무조사 성과 (자료제공=국세청)
▲물가안정 세무조사 성과 (자료제공=국세청)

국세청이 밝힌 조사 사례를 보면 가격 인상 명분과 실제 돈의 흐름 사이의 괴리가 반복됐다.

한 종합식품 제조업체는 독과점 시장에서 제품 가격을 약 5% 올린 뒤 계열사에 외주용역비를 과다 지급하고 해외 현지법인에서 상품을 비싸게 사들이는 방식으로 약 150억원의 이익을 넘겼다. 대형마트 등에 지급한 접대성 판매장려금 약 200억원은 물류비로 처리했다. 특수관계법인의 유상증자에도 단독 참여해 신주를 비싸게 사들이는 방식으로 사주 자녀에게 이익을 넘겼다. 국세청은 약 200억원을 추징했다.

다른 식품 제조업체는 주요 원재료의 국제가격이 떨어졌는데도 제품 가격을 올렸다. 거래처가 부담해야 할 파견 직원 인건비 약 300억원을 비용으로 처리하고 특수관계법인에서 원재료를 비싸게 사들인 사실 등이 드러나 약 90억원을 추징당했다.

▲매입단가를 조작하여 특수관계법인으로부터 원재료를 고가 매입하고 이익을 분여한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자료제공=국세청)
▲매입단가를 조작하여 특수관계법인으로부터 원재료를 고가 매입하고 이익을 분여한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자료제공=국세청)

가격을 그대로 둔 채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도 조사망에 걸렸다. 한 대형 F&B 프랜차이즈는 제품 용량을 줄여 사실상 가격을 올린 뒤 특수관계법인을 원재료 거래에 끼워 넣어 비싸게 사들이는 방식으로 20여억원의 이익을 넘겼다.

특수관계법인 임직원이 퇴직 후 가맹점을 열 때 점포개설지원금을 지급해 비용 약 50억원을 과다 계상하고, 스포츠구단과의 공식 파트너십에 따른 공동 광고비를 혼자 부담해 해외 현지법인을 지원한 사실도 확인됐다. 특정 계열사 홍보비 약 20억원도 대신 냈다. 국세청은 약 200억원을 추징했다.

원두값 상승을 가격 인상 명분으로 내세운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에서는 사주 일가로 약 20억원이 가공급여 등의 형태로 빠져나갔다. 사주 자녀는 부동산과 주식 취득자금 약 40억원을 지원받고도 증여세를 신고하지 않아 약 40억원을 추징당했다.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을 탈세에 이용한 사례도 있었다. 한 식음료 업체는 할당관세 물량 한도를 피하기 위해 퇴직 직원 명의의 도관업체를 내세워 원재료를 수입하고 허위 세금계산서를 받았다. 부당하게 공제받은 매입세액 70여억원이 추징됐고 관련자들은 고발 등 범칙처분을 받았다.

공공기관 입찰 담합에 가담한 전자부품 제조업체도 적발됐다. 담합 관련 수수료를 비용으로 처리하고 해외 현지법인을 부당 지원한 데다, 연구업무를 전담하지 않은 직원의 인건비 약 80억원을 연구·인력개발비 세액공제 대상으로 신고했다. 사주 일가는 법인카드를 골프장과 백화점, 유흥비 등에 사용했다. 국세청은 약 40억원을 추징했다.

▲언론홍보비, 공동수행업무 직원 인건비 등 공동경비 초과부담하고, 사주 자녀에게 업무무관 해외 출장비를 지급한 상조회사 (자료제공=국세청)
▲언론홍보비, 공동수행업무 직원 인건비 등 공동경비 초과부담하고, 사주 자녀에게 업무무관 해외 출장비를 지급한 상조회사 (자료제공=국세청)

한 상조회사는 기존 상품과 유사한 상품을 새로 출시하고 기존 상품을 없애는 방식으로 가격을 수십% 올렸다. 계열사 공동업무에 종사하는 직원 인건비와 언론홍보비 등 공동경비 약 30억원을 과다 부담해 계열사를 지원하고, 실제 근무하지 않은 사주 자녀에게 급여와 해외 출장비를 지급했다. 사주가 개인적으로 고용한 가사도우미 인건비도 회사 비용으로 처리해 약 50억원을 추징당했다.

국세청은 앞으로 특정 기업의 지배력이 우월한 독과점 업종과 담합이 빈번한 업종, 민생 밀접 업종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방침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경제여건을 핑계로 과도하게 가격을 올리면서 마땅히 내야 할 세금을 탈루한 것으로 확인된 업체는 즉시 조사대상으로 선정하고 조사 집행 시에는 일시보관, 금융계좌 추적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조세포탈, 거짓 세금계산서 수수 등 조세범칙행위가 적발되면 '조세범 처벌법'에 따라 처벌받도록 단호히 조치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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