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성찰과 질문 능력 무장해
인간다움 갖출 때 리터러시 완성돼

이제 AI는 더 이상 실험실의 기술이 아니다. 2026년 글로벌 AI 시장은 5000억달러를 돌파했고, 전 세계 기업의 88%가 최소 하나 이상의 업무 영역에 AI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는 ‘AI를 쓸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AI와 함께 일할 것인지’의 문제다.
특히 최근에는 에이전틱 AI(Agentic AI)가 부상하고 있다. ‘커니(Kearney) AI 추세 보고서’에 의하면, 2026년 에이전틱 AI 시장은 연평균 45%씩 성장해 2030년 526억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복적·정형화된 업무에서 이미 생산성 20~60% 향상 사례가 보고되고 있으며, 2029년까지 고객서비스 운영 비용의 30%를 절감할 수 있다는 연구도 제시되고 있다.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도구를 넘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행동을 연속 수행하며 목표를 달성하는 자율 AI 에이전트가 산업 현장에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추세 속에서 AI 발전 및 활용이라는 ‘기술적 질문’을 넘어, 인간과 AI가 어떻게 협업해야 하며, 이러한 ‘AI 시대에 바람직한 인재상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 질문을 불러낸다.
에이전틱 AI 시대에 가장 먼저 정립해야 할 것은 철학이다. AI를 단순한 자동화 도구로 바라보는 시각과, AI를 ‘협력하는 파트너’로 바라보는 시각은 실제 성과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인간 중심 AI(Human-Centered AI)의 핵심 원칙은 ‘보완성(Complementarity)’이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슬론(Sloan)경영대학원의 반살(Bansal) 연구팀은 AI 팀에서 최고 성과는 AI 단독이 아니라, 인간의 직관적 판단과 AI의 방대한 데이터 분석 능력이 상보적으로 결합할 때 달성됨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즉 AI 팀의 최고 성과는 인간 직관과 AI 분석의 상보적 결합에서 발생하며, 인간이 AI보다 우월한 영역(맥락 판단, 감성적 의사소통, 창의적 방향 설정)에서 먼저 협업할 때 두 주체 모두를 능가하는 ‘시너지’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최근 인간·AI 협력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발견이 있다. AI를 도입하기 전에 사람들 사이에서 충분한 사전 협의와 역할 분담이 이루어진 경우, 협업 성과가 현저히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경험적 직관이 아니라 실증 연구로 뒷받침된다.
중국 난징대와 국방과학기술대 공동연구팀의 실험(Guan 등, 2023)에 의하면, 사람이 AI와 본격적인 협업을 시작하기 전에, 사람들 간의 협의를 통해 작업 요건, 역할, 우선순위, 실행 순서를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사전 협약으로 명확히 설계한 경우, 기존 학습 기반 접근법 대비 평균 15% 이상의 성과 향상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입증했다.존스홉킨스대와 MIT 공동연구팀은 2310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현장 무작위 실험에서, 인간·AI 팀이 인간·인간 팀 대비 50% 더 많은 산출물을 생산했지만, 성과를 높인 결정적 요인은 AI 그 자체가 아니라 과업 지향적 소통(Task-Oriented Communication), 즉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지시와 우선순위 합의였음을 밝혔다. 반면, 소통 없이 AI에 전적으로 의존한 팀은 결과물의 다양성 붕괴(Diversity Collapse)가 일어나 창의성이 저하되는 현상도 관찰됐다.
따라서 AI 활용 전 팀 내 사전 합의 소통 문화를 정착할 필요가 있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AI에게 무엇을 시킬 것인가’보다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를 팀이 먼저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AI 기술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이제 누구나 AI를 논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과연 우리 사회와 기업에 진짜 필요한 AI 인재는 어떤 모습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미흡하다.
흔히 AI 기술의 발전과 활용을 지탱하는 4대 축으로 ‘ABCD’를 꼽는다.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 기술(A), 그 기반이 되는 대규모 데이터(B), 이를 구동하는 컴퓨터 시스템 기술(C), 그리고 기술이 실제로 구현되는 응용 전문 영역의 도메인 지식(D)이다. 이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적 뼈대이며, 기술적 의미의 ‘AI 리터러시’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하지만 현장에서 AI를 다루어본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기술적 역량인 ‘ABCD’만으로는 무언가 결정적인 결핍이 존재한다고 말이다. 기술의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상향 평준화될수록, 역설적으로 마지막 차별점은 인간의 고유한 역량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로 ‘E’가 더해져야 한다. ‘E’는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이끌어갈 인문학적 소양과 소프트 스킬을 뜻한다.
첫째, Enquiry(질문과 탐구)다. AI가 정답을 만들어내는 시대에 정작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을, 왜 질문할 것인가”이다.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진짜 문제를 정의(Problem Definition)하여 AI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힘이 곧 경쟁력이다.
둘째, Empathy(공감과 협력)다. AI 기술은 혼자서 완성할 수 없다. 사용자의 불편함에 공감해야 올바른 기술의 방향을 잡을 수 있고, 다양한 도메인의 동료들과 소통하고 협력해야만 기술이 실질적인 가치로 전환된다.
결국 진정한 AI 리터러시의 완성은 ‘ABCDE’의 균형에 있다. 기술과 데이터(ABC)를 내 업무(D)에 접목하는 것을 넘어, 인문학적 성찰과 질문력(E)으로 AI를 주도하는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 기술의 시대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사람, 인간다운 역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