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황하섭 제우스 대표 “AI시대, 후공정이 반도체 경쟁력 좌우” [기술 속국 탈출기⑧]

입력 2026-07-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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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을 비롯한 첨단 산업이 빠르게 확장되며 반도체를 포함한 다양한 제조업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완제품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그 기반에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의 기술력이 자리하고 있다. 반도체는 물론 로봇, 디스플레이 등 산업 전반에서 소부장은 기술 한계를 돌파하는 출발점이자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본지는 다양한 산업의 소부장 기업 대표들을 릴레이로 만나 기술 변화의 흐름과 시장에 대한 진단을 들어본다. 현장에서 바라본 기회와 위기, 그리고 산업 생태계가 나아갈 방향을 함께 짚어본다.

‘삼성 36년’ 베테랑 황하섭 대표 인터뷰
HBM 확산에 세정·디본더 기술력 부각
대기업·소부장 상생이 산업 경쟁력

삼성전자에서 36년 동안 메모리 생산 현장을 지킨 황하섭 제우스 대표는 AI 반도체 시대를 ‘후공정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과거에는 회로를 얼마나 미세하게 구현하느냐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여러 개의 칩을 얼마나 정밀하게 연결하고 적층하느냐가 성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반도체 장비업계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장비를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과 함께 새로운 공정을 설계하는 것이 경쟁력이 됐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3월 제우스에 합류한 황 대표는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 제조센터장과 평택단지장, 중국 시안 법인장 등을 거친 제조 전문가다. 반도체 생산 현장에서만 30년 넘게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지금 제우스의 미래를 첨단 패키징 장비에서 찾고 있다.

“AI 시대, 경쟁력은 후공정에서 나온다”

황 대표는 최근 경기도 화성시 제우스 본사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전공정이 경쟁력의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후공정 중요성이 훨씬 커졌다”며 “AI 시대에는 칩을 얼마나 정밀하게 쌓고 연결하느냐가 성능을 결정하는 만큼 장비업체 역시 새로운 공정을 함께 만들어가는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반도체 인생은 1989년 삼성 반도체 입사와 함께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한국 반도체 산업은 지금처럼 세계 시장을 이끄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는 사원 시절부터 세정(Cleaning) 공정을 맡아 제조 현장을 경험했고, 이후 세정·CMP 공정과 중국 시안 생산법인, 메모리 제조센터 등을 두루 거치며 생산기술과 공정 운영을 모두 경험했다.

후발주자의 승부수…“고객과 공정 함께 만든다”

그가 제우스에 합류한 뒤 가장 먼저 들여다본 것은 회사의 경쟁 방식이었다. 세정 장비 시장에는 일본 TEL과 국내 세메스처럼 오랫동안 시장을 이끌어온 기업들이 자리하고 있다. 후발주자인 제우스가 생산 규모나 공급 실적으로 정면 승부를 펼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황 대표는 오히려 이 점이 제우스만의 차별화 전략을 고민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현재 제우스는 대형 고객사들과 여러 신규 장비를 공동 개발하며 양산라인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일부 장비는 이미 생산라인에서 성능을 검증받고 있고, 일부는 제작 단계에 있다.

황 대표는 최근 1~2년 동안 반도체 소부장 업계가 다소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이를 지나가는 업황으로만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금은 차세대 장비를 준비해야 할 시기라는 판단이다.

그는 “지금은 장비를 많이 판매하는 시기라기보다 고객과 함께 차세대 공정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지금 확보한 기술이 앞으로 양산 투자가 본격화될 때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AI 확산으로 반도체 산업의 중심축이 첨단 패키징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에는 웨이퍼 위에 얼마나 미세한 회로를 구현하느냐가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여러 개의 칩을 하나의 패키지 안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적층하느냐가 성능을 좌우하기 시작했다. 특히 HBM처럼 D램을 여러 층으로 쌓는 제품이 AI 반도체의 핵심 메모리로 자리 잡으면서 후공정 기술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HBM 시대 핵심 기술로 떠오른 세정·디본더

황 대표는 “HBM은 여러 장의 D램을 정밀하게 적층해야 하는 제품”이라며 “적층 수가 늘어날수록 세정과 파티클 관리, 얼라인먼트, 본딩과 디본딩 등 후공정 전반의 기술력이 성능과 수율을 결정하게 된다”고 진단했다.

HBM 시장 확대는 세정 장비의 역할도 크게 바꿔놓고 있다. HBM은 여러 장의 D램을 수직으로 적층하는 구조인 만큼 웨이퍼를 극도로 얇게 가공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오염물질이나 파티클은 곧바로 수율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공정이 고도화될수록 세정 기술이 단순한 보조 공정이 아니라 생산성과 직결되는 핵심 기술로 자리 잡는 이유다.

황 대표는 제우스가 오랫동안 축적해온 세정 기술을 차세대 패키징 공정으로 확대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기존 장비 성능을 개선하는 수준을 넘어 AI 반도체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세정 공정을 먼저 제안하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그는 “과거에도 세정은 중요했지만 AI 시대에는 그 중요성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며 “웨이퍼를 더 얇게 만들고 적층 수가 계속 늘어나면서 아주 작은 오염물질 하나도 수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앞으로는 세정 기술 자체가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압 세정과 함께 제우스가 차세대 핵심 기술로 육성하는 분야는 디본더(Debonder)다. HBM 제조 과정에서는 웨이퍼를 수십 마이크로미터(㎛) 수준까지 얇게 연마해야 한다. 이렇게 얇아진 웨이퍼는 자체 강도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임시 캐리어 웨이퍼에 붙여 공정을 진행한 뒤 마지막 단계에서 다시 분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웨이퍼가 조금이라도 휘거나 손상되면 제품 전체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적층 수가 많아질수록 디본딩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는 이유다.

황 대표는 기존 방식보다 웨이퍼 손상을 줄일 수 있는 포토닉(Photonic) 디본더 기술을 차세대 성장축으로 꼽았다.

그는 “기존에는 물리적인 힘으로 떼어내거나 레이저를 이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며 “제우스는 제논 램프를 이용한 포토닉 방식을 개발하고 있다. 접착층에 순간적으로 에너지를 전달해 접착력을 제거하는 방식이라 웨이퍼 손상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황 대표는 결국 장비업체의 경쟁력은 고객보다 한발 앞서 공정을 준비하는 데 있다고 봤다. 반도체 제조사가 양산을 시작한 이후 장비를 공급하는 시대는 지났고, 연구개발 단계부터 고객과 함께 공정을 설계해야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황 대표가 꼽은 분야는 차세대 패키징 기술인 PLP(Panel Level Packaging)다. 현재 대부분의 반도체 패키징은 원형 웨이퍼를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대형 패널을 활용하는 PLP가 차세대 공정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직 시장 초기 단계인 만큼 공정과 장비를 선점하려는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황 대표는 “제우스는 삼성전자와 대형 패널 기반 패키징 장비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며 “TSMC도 같은 분야를 개발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중소형 공정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패널 레벨 패키징용 세정 장비 분야에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자신했다.

▲황하섭 제우스 대표이사가 23일 경기 화성시 제우스 본사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황하섭 제우스 대표이사가 23일 경기 화성시 제우스 본사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2028년이 변곡점…AI가 반도체 수요 이끈다”

황 대표는 시장의 본격적인 성장 시점을 2028년 전후로 내다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평택, 청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대규모 생산기지가 순차적으로 가동되고 AI 데이터센터 투자도 확대되면서 첨단 패키징 장비 수요 역시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용인 국가산업단지와 일반산업단지가 모두 완성되기까지는 대략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며 “그 기간에도 AI 데이터센터와 휴머노이드 등 새로운 수요가 계속 만들어질 것으로 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반도체 시장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메모리 산업의 성장성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시각을 내놨다. 업황 사이클은 반복되겠지만 AI 확산으로 수요 기반 자체가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는 이유에서다.

황 대표는 “메모리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정도”라며 “중간중간 업황은 흔들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급보다 수요 증가 속도가 더 빠를 것으로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황 대표는 중국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과거와 달라졌다고 말했다. 한때 수백 대 규모의 장비를 공급할 만큼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대했지만 최근에는 중국 정부의 자국 장비 육성 정책으로 시장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 대표는 “과거에는 중국 시장에 장비를 수백 대 판매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진출했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 정부가 자국 장비 사용을 적극 지원하면서 현지 업체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도 장비 공급은 이어지고 있지만 예전처럼 공격적으로 시장을 확대하기보다 기존 고객 지원과 유지보수 중심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미국의 대중국 장비 수출 규제가 한국 기업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불확실성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황하섭 제우스 대표이사가 23일 경기 화성시 제우스 본사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황하섭 제우스 대표이사가 23일 경기 화성시 제우스 본사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소부장도 함께 커야 산업 경쟁력 높아져”

그는 국내 반도체 생태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과 함께 대기업과 소부장 기업 간 협력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정부 지원은 실제 연구개발에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며 “고객사와도 개발 과제를 진행 중이며, 그 과정이 국내 장비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객사와의 상생 문제를 이 업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그러면서 “대기업과 소부장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국내 장비업체 경쟁력이 결국 고객사의 경쟁력으로도 이어지는 만큼 상생을 위한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1989년 삼성 반도체에 첫발을 내디뎠던 그는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며 반도체 산업은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산업이 아니라고 했다. 오랜 시간 기술을 축적하고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이 있어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반도체는 한 분야 전문가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산업”이라며 “제우스도 우리만의 공정과 특화 장비를 꾸준히 개발한다면 앞으로 5년 안에는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성장한 회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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