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당인 국민의힘과 그 지지자들을 비롯한 보수 세력은 부정 선거 의혹과 재투표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중이다. 그러나 정부와 기성 오피니언 리더, 그리고 주요 언론에서는 선관위의 구조적 문제와 관계자들의 무능력에 집중하는 듯하다.
그러는 새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 개막은 어김없이 다가와 시민들은 분노의 성토 대신 응원과 환호로 거리를 메웠다. 시간이라는 불가항력과 인간의 인지적 유한성, 그리고 스포츠 이벤트가 결합하면 그 어떠한 정치적 참사도 희석되는 법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주류 담론에서 밀려난 정치적 참사는 사회의 여러 비주류 담론 체계에 고이게 되며 비정형적으로 폭발한다. 지금 유튜브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모론이 그런 예다. 가령, 중국이 개입하여 부정선거가 치러졌다느니, 특정 정치세력에 의해 이번 지방선거가 하이재킹됐다느니 하는 주장 등이 그렇다.
구태의연한 음모론들이지만, 이전과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예전에 이런 정치적 음모론들이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났거나 소수의 정치적 니치(niche) 집단에서 향유되었다면, 이번 6·3 지방선거로 인해 하나의 합당한 가설로 폭넓은 집단에 수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음모론은 단순히 개인의 쓸데없고 하찮은 믿음이 아니다. 그 자체로 한 사회의 필수 유지 능력을 갉아 먹는 파괴력을 가진다.
사비아노(Saviano)나 판 푸루이옌(van Prooijen)과 같은 정치심리학 연구자들은 음모론이 가진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음모론 자체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담론 생산 방식이 합당하다고 인정되는 사회일수록, 사회 신뢰가 구조적으로 파괴되기 쉽다고 말한다. 좀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자면, 음모론이 활발히 생성되고 수용되는 사회일수록 그 사회는 민주 제도의 유지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민주주의 사회는 구성원 간의 신뢰, 더 나아가 법과 제도에 대한 신뢰 없이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음모론적 사회의 종착역은 결국 ‘사회 신뢰 파산’이다. 이 상태에 이르게 되면 민주주의는 더 이상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게 되며, 독재나 전체주의가 그 사회를 점령하게 될 수도 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이런 위태로운 상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당, 야당,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대한민국을 이끄는 정치 집단은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우리 사회에 남기고 간 상처를 잘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 깊은 상처가 아무는 데에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흉터는 아마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 흉터가 한 사회의 발목을 잡는 트라우마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각성의 계기로 남을 것인지는 지금 우리가 이번 사태를 얼마나 능동적으로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