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AI주권 확보’ 정책 강화하는 유럽연합

입력 2026-06-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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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데이터 인프라는 단순한 기술 상품을 넘어 국가 안보와 경제 체력을 결정짓는 핵심 자산인 주권(소버린)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글로벌 시장이 미·중 중심의 빅테크 구도로 고착화되는 가운데, 최근 가장 격정적인 변화를 보이는 곳은 바로 유럽연합(EU)이다.

EU는 더는 미국의 기술 인프라에 자신들의 미래를 맡기지 않겠다며 강력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EU의 디지털 주권 움직임은 시장 규제를 넘어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를 위한 생존 전략이다.

공공조달 시장서 미국 빅테크 배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와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핵심 데이터 인프라를 해외 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국가 안보에 치명적이라는 위기의식이 극에 달했다. 프랑스는 이미 정부 차원에서 업무용 협업 툴인 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팀즈에서 벗어나 자체 개발한 국산 대안 소프트웨어로의 전환을 완료했다. 다른 회원국들도 이 추세가 빠르게 확산 중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클라우드, AI, 반도체 분야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전방위적인 입법 패키지를 추진 중이다. 우선 공공 조달 시장 장벽을 높여 미국 빅테크를 배제하고 있다. 아마존(AWS), 마이크로소프트(Azure), 구글 등 핵심 공공기관 및 민감 데이터를 다루는 유럽 내 계약에서 미국 빅테크의 참여를 원천 제한하거나 차단하는 규정을 도입하고 있다. 기술력이나 가격보다 ‘안보와 주권’(역내 소재 기업)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고 있다.

또한 원격 ‘킬 스위치’ 방지도 추진한다. 지정학적 갈등 발생 시 비유럽권 정부나 기업이 정치적 이유로 기술 서비스를 원격 중단시켜 유럽의 디지털 인프라가 교란되는 사태를 막기 위함이다. 마지막은 자국 기술 생태계의 내재화다. 유럽 내 반도체 자체 생산 능력을 키우고, 유럽형 클라우드 인프라(GAIA-X 등)와 독자적인 AI 모델 개발을 전폭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EU의 강력한 주권 확보 드라이브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기술 생태계를 두고 내부 핵심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팽팽한 시각차가 존재한다. 강경파(미스트랄AI 최고경영자 등)는 유럽에서 운영되는 모든 상업적 AI 모델에 ‘콘텐츠 부과금’의 징수를 주장한다. 반면 현실파(지멘스 최고경영자 등)는 지나친 ‘기술적 독립’을 고수하다가는 현실적으로 막대한 연구개발비와 공급망 파편화 장벽에 부딪혀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디지털 주권, 국가안보 핵심으로 떠올라

EU의 이러한 전방위적 행보는 글로벌 IT 시장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우선 디지털 분절화 현상이다. 전 세계가 하나의 거대 플랫폼을 공유하던 시대는 가고, 권역별로 독립된 ‘기술의 파편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향후 유럽 시장을 겨냥해 별도의 ‘데이터 거버넌스’ 구축, 현지 기업과의 파트너십 등 막대한 우회 비용을 안게 된다. 반면 유럽 현지 기업에는 기회다. 미국 빅테크의 그늘에 가려 있던 유럽의 AI 스타트업과 현지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정부의 보호주의 정책으로 점유율을 넓힐 기회를 맞이했다.

EU의 결단은 ‘디지털 주권이 21세기 국가 안보이자 경제 안보’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이정표다. 미·중 주도권 싸움에 이어 EU마저 빗장을 걸어 잠그는 이 ‘AI 주권 전쟁’의 시대 속에서, 우리 역시 독자적 거버넌스 구축과 현실적인 글로벌 협력 사이에서 정교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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